[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트랜스젠더에 관한 정부 정책이 공백을 보이는 사이,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와 차별이 사회 곳곳에서 번지고 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에 위축돼 국민이라면 당연히 갖는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가 하면, 학교와 직장에서도 성적 다양성을 배척하면서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이 국가인권위원회 발주로 지난 2020년 5월부터 11월까지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를 조사해 최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554명 중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일상적 용무를 포기한 트랜스젠더는 193명으로 34.8%를 차지했다. 조사에는 만 19세 이상 트랜스젠더 591명이 참여했다.
이 중 병원 등 의료기관 이용을 포기한 응답자가 21.5%로 가장 많았고, 이어 △술·담배 구입, 술집 방문(16.4%) △보험 가입 및 상담(15%) △은행 이용 및 상담(14.3%) 순으로 나타났다. 투표 참여도 10.5%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응답자 115명인 19.5%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신분증 확인으로 출생시 법적 성별이 드러나는 게 두렵거나(27명) 신분증 확인으로 현장에서 주목받는 게 두려웠다(26명)고 대답했다.
트랜스젠더들은 92.3%에 달하는 539명이 중·고등학교 환경이나 제도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중복응답자 중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이 부재했다는 응답이 69.2%로 가장 많았고,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교복을 착용하는 게 힘들었다는 응답도 62.3%로 조사됐다. 이밖에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화장실 이용(51.7%)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탈의실 부재(45.9%) △여중·여고 또는 남중·남고인 점(38%)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중·고교 수업 중 교사가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들었다는 응답은 67%로 집계됐다. 대학교를 다닌 트랜스젠더 469명 중 42.4%는 교수나 강사가 수업 중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했다고 답했다. 22.8%는 성소수자 비하 표현이 담긴 수업자료를 활용했다고 응답했다. 트랜스젠더들은 중·고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도 성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다.
트랜스젠더들은 직업을 구할 때도 어려움을 느꼈다. 구직 활동 경험이 있는 트랜스젠더 469명 중 57.1%에 달하는 268명은 성 정체성으로 인해 직장 지원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중복응답자 중 48.2%를 차지하는 225명은 외모·복장·말투·행동 등이 남자나 여자답지 못하다고 부정적 반응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주민등록번호에 제시된 성별과 외모, 또는 성별 표현이 일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는 응답도 37%로 나타났다. 법적 성별을 정정한 게 드러날 수 있는 대기업이나 관공서 지원을 포기했다는 응답도 16.1%를 기록했다. 15.9%는 입사·채용이 취소되거나 거부됐다고 응답했다.
가족도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591명 중 가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34.4%로 가장 많았다. 25.7%는 반대하거나 무시한다고 답했다. 지지한다는 응답은 23.7%로, 지지도·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답은 16.2%로 조사됐다.
가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 있다고 답한 373명에서는 56.6%가 가족이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모른 체 했다고 답했다. 44%는 옷이나 화장 등 원하는 성별 표현을 못하게 했다고 응답했다. 언어적 폭력을 가했다거나(39.4%) 대화하지 않으려 했다(27.9%)는 응답도 있었다.
트랜스젠더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사회 곳곳의 시선은 트랜스젠더의 정신·신체적 건강을 악화하게 만든다. 트랜스젠더 건강문제를 연구하는 고려대 레인보우커넥션 프로젝트팀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트랜스젠더집단은 우울 증상이 적게는 6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또 본인의 성별정체성으로 사회적 낙인에 노출되면서 스스로 혐오에 빠지게 돼 자살시도를 할 가능성도 1.3~1.44배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지난 16일 서울시의회 앞 도로에서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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