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애도기간 마지막 날 밤 찾아간 서울시청 광장은 마냥 외롭거나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틀어막은 입 사이로 쏟아지는 통곡이야 어쩌겠느냐마는, 경건하고 조용히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마지막 길을 비추는 시민들의 따스한 눈빛은, 서로의 깊은 충격까지 보듬고 쓸어 안아주고 있었다.
7일 오전 6시 기준 '이태원 참사' 인명 피해 통계는 사망 156명과 부상자 197명 등 총 353명. 그러나 전 국민이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 상황에서 이번 참사의 인명피해는 5000만명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8년 전 299명이 사망한 '4·16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반성했단 말인가. "잊지 않겠다"던 그 약속은 과연 지켜졌는가. 전쟁 중도 아닌 평온한 가을 주말 밤, 생때같은 목숨 156명이 서울 도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내 탓이오, 내가 책임 지겠오" 나서는 공무원이 한 명도 없다. 혹여나 자기가 엮일까봐 너도나도 발만 빼고 있다.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느니,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느니,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느니 하는 말들을 듣고 있는 국민들은 그저 욕지기가 나와 견딜 수 없다. 그렇다. 그냥 정권만 두 번 바뀌었을 뿐이다.
정부 차원 대응은 한 마디로 어처구니 없다. 행정안전부가 이번 비극을 '참사' 아닌 '사고'로 부르라고 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관광지인 이태원에 대한 평가에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 시킬 수 있어서란다. 국무총리도 외신을 만나 유창한 영어로 ’incident(사고)’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CNN, BBC 등 유수한 영어권 매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랍권 언론인 알자지라 방송까지 이번 일을 'disaster(참사)'라고 보도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이러니 서울시 25개 구청 추모문만 봐도 '참사'와 '사고'가 입맛대로 갈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제목을 '참사'로, 본문은 '사고'로 혼용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걱정되는 것은, '이태원 참사'로 또 다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SNS와 유튜브상에선 여야 극성 지지자들이 각자 세를 몰아 말도 안 되는 온갖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뿌려대며 총력을 다 해 서로를 씹어대고 있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3년 전 '조국 사태'의 수레바퀴 자국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자신들만의 헤게모니 싸움에 매몰돼 민주주의의 참뜻을 왜곡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는 '혐오정치', '팬덤정치'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국민은 그만 두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희생자들과 유족 앞에서 할 짓거리들이 아니다.
이번 참사로 우리 정부의 '공직자적 감수성'이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이 재확인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발언은 '핼러윈데이'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뿌리 깊게 들어선 자기표현 문화임을 알지 못한 결과다. '주최측이 없는 축제'라는 희한한 논리로 법적책임으로부터 선을 그으려는 심산이었겠으나 결국 이들의 발언은 기성세대와 젊음층의 분열을 한층 가열시키는 데 일조했음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무슨 시스템을 자꾸 개선하고 또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척에서 죽어가는 시민들을 외면한 관할 구청장이나, 관용차량 타고 시간 다 보낸 다음 뒷짐지고 세월아네월아 현장 찾아간 관할서장, 빗발치는 구조신고를 나몰라라 하고 근무지를 이탈한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의 행동이 과연 시스템의 문제였을까. 이 정부의 모든 공복들은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헌법 7조부터 다시 한 번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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