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어려운 문제 푸는 것이 정부의 일
입력 : 2023-04-27 06:00:00 수정 : 2023-04-27 06:00:00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 첫날인 지난 25일, 넷플릭스 투자 유치 소식이 들려오며 세간에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넷플릭스가 4년간 우리돈으로 3.3조원 가량을 국내 콘텐츠에 투자한다는 소식이었는데요. 한국 대중에게도 익숙한 글로벌 공룡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이름, 여기에 조 단위 숫자가 주는 호방한 기운이 더해져 시쳇말로 '핫한 이슈'가 됐습니다. 주요 콘텐츠 기업들의 주가가 들썩이는 등 시장에서도 환호하는 분위기가 연출됐죠.
 
투자의 절대적 수치가 큰 만큼 국내 콘텐츠 업계엔 반가운 소식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전해진 '방미 성과' 소식을 두고, 덮어놓고 환호부터 하기엔 뭔가 찜찜합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우선 저 숫자가 유의미한 새로운 성과인가 하는 점입니다. 넷플릭스의 2022년 한국 콘텐츠 투자금액이 8000억원으로 추산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4년간 3.3조원 투자한다는 소식은 단순 계산만으로도 '서프라이즈' 급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또 한국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공격적 투자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바로 넷플릭스에 이익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죠.
 
주지하다시피 넷플릭스 역대 1위 흥행 기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오징어 게임'은 그간 고전하던 넷플릭스를 살려낸 1등 공신으로 꼽힌 바 있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K 콘텐츠의 위상을 감안할 때, 넷플릭스 입장에선 주머니를 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콘텐츠 제작 투자비용은 넷플릭스가 감당하지만 그 대가로 해당 콘텐츠의 IP(지적재산권)를 챙긴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이번 발표는 콘텐츠를 잘 만들어 넷플릭스에 이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큰 나라에 예년 수준의 투자를 공언한 것, 그 정도의 약속이란 얘깁니다.
 
물론 금액을 확정적으로 말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변화 무쌍한 사업환경 속에서 향후 투자 금액을 한국 정상 앞에서 약속한 것은 국내 콘텐츠 업계에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효과를 낼 겁니다. 하지만 이것이 분명히 근거 있는 투자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국내 콘텐츠 업계가 오랜 기간 쌓아올려 만든 공든 탑이 대통령의 방미 성과로 포장되는 건 어쩐지 보기 좀 민망하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발표에서 아쉬운 대목은 정부의 좁은 시야각입니다. 국내의 유관 생태계 전반을 헤아려 살피는 마음이 읽히지 않는 것이 특히 아쉬운데요.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으면서 콘텐츠, 그리고 그 주변 생태계는 현재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나 다름 없는 형국입니다. 국내 토종 OTT는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콘텐츠 투자금액을 울며 겨자먹기로 늘리고 있고, 국내 망사업자는 넷플릭스의 망사용료 거부로 한바탕 혈전을 벌이는 중이죠. 이밖에 넷플릭스의 법인세 먹튀 논란 속 떠오른 형평성 문제에 속으로만 끙끙앓는 국내 사업자들도 즐비합니다. 이런 판국에 넷플릭스 투자 유치가 큰 뉴스로 포장돼 들려오니 사업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잠시잠깐 눈길을 끄는 단발적 뉴스 말고, 정책적 접근과 해결을 바라는 건 아직도 욕심일까요. 정부라면,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될 특정 분야에 숟가락을 얹기보다는 사업자들이 사업 잘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하는 데 좀더 초점을 맞춰 정책적 성과를 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쉬운 문제 말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오는 방미 성과, 우리 기업들은 언제쯤에나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김나볏 중기IT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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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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