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하반기에 점차 전세사기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 등으로 매출이 줄어들어 버틸 여력이 없는 소상공인들을 긴급하게 살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지난 24일 전세사기로 인한 희생자가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서울에서 발생한 사건까지 포함하면 최근 대두된 전세사기 관련 사망자 수는 누적 5명입니다. 전세사기 피해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고점에서 전세 계약을 맺은 이들의 만기가 올해 가을부터 내년 봄쯤에 도래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을 점쳐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피해가 치명적으로 파고 들고 있습니다. 소상공인 관점에서 보면 계약과 채무가 오가는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신용이 더욱 중요합니다. 만약 전세사기 피해로 신용이 바닥으로 떨어질 경우 사업마저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대출을 받을 때도 소상공인은 직장인보다 신용 확보가 어렵습니다. 전세사기 피해 발생시 생계에 미치는 범위가 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또한 피해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기 피해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개인 역량 부족이나 의심으로 이어져 그 또한 사업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서입니다.
전세사기 피해로 힘든 이들이 도처에 있는 터라 특정 군을 따로 떼서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사정이지만, 적어도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기관에서는 전세사기 피해 소상공인들을 들여다 봐야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래픽=인천신용보증재단)
인천지역만 전세피해 소상공인 특례보증
현재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지역은 인천 지역뿐입니다. 지난 8일부터 인천신용보증재단은 인천시 소재 전세사기 피해 소상공인에 '전세피해 소상공인 취약계층 특례보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총 50억원 규모로 최대 3000만원 이내의 정책자금을 연 0.5%의 보증료율로 특례보증하고 있습니다. 인천신보재단 대출 금액 총 한도 1억원 이내에서 지원됩니다. 상환기간은 5년(1년 거치 4년 분할상환)이며, 최초 3년간은 이자의 1.5%를 인천시가 지원합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전세피해확인서를 발급받은 소상공인이라면 다른 상품보다 우선해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5일 현재 신청건수는 모두 실행이 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HUG에서 전세피해확인서를 발급하는 과정에서 긴 시간이 소요돼 신청건수 자체가 예상보다 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천신보재단은 어렵게 해당 특례보증을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세사기의 경우 개인 간 채무문제이기 때문에 금융권의 양해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미추홀구에서 피해자가 급증하자 인천시 시금고인 신한은행과 인천시, 인천신보재단이 합심해 해당 보증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인천신보재단 관계자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피해가 극심했고 안타까운 일들도 발생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특례보증을 준비하게 됐다"면서 "소상공인들의 경우 고정된 급여 소득자가 아니어서 수입의 등락이 심한 데다 코로나19 이후 매출도 줄고 힘든 상황에서 이 같은 전세사기를 당해 피해가 더 클 것으로 봤다"고 말했습니다.
인천신보재단은 전세자금 수준의 거액을 특례보증하지는 못하지만 당장의 극단적인 상황을 유예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3000만원으로 소상공인의 급작스런 폐업을 막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겁니다. 인천신보재단 관계자는 "저희 특례보증을 계기로 다른 지역에서도 전세사기 피해 소상공인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신용보증재단도 이 같은 대출 지원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은행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전해졌습니다. 개인이 일신상의 이유로 피해가 난 것이기 때문에 은행으로선 부담이 커서 대출을 맡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근본책 아니어도 급한 불은 꺼야
대출에 대한 시각이 고운 것만은 아닙니다. 이미 빚이 쌓인 이들에게 다시 대출을 해준 다는 것은 빚만 늘리는 격이기도 합니다. 대출이 근본책이 될 수 없다고 여러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전 재산을 잃고 빚까지 생긴 사람들에게 또 대출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정책의 시작점이면 안 된다"며 "보충적인 수단으로만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역시 "소상공인들의 경우 코로나19로 대출을 안 받은 이들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며 "결국 대출은 빚을 더 보태주는 것 밖에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장의 극단적인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차선책으로 이용될 수는 있다는 입장입니다. 임 교수는 "주거 불안정이 된 피해자들을 위해 주거 안정대책이 더 시급하지만 대출을 통해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전세사기는 전 국민들과 연결이 돼있고 전 국민 안에 소상공인이 포함돼 있다"면서 "리스크 증대를 감소시킬 수 있는 지원책을 만들어 환경 안정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인천지역을 제외한 타 지역에서는 아직 전세사기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하지만 인천신보 사례에서 보듯 제도가 엄연히 마련됐는데 행정상의 문제로 지연되는 문제는 조속히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HUG의 피해확인서 발급이 늦어지면서 해당 특례보증을 신청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피해확인서 발급이 좀더 빨라져야 해당 제도에 대한 공고 및 홍보가 나가게 되는데, 여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고 합니다.
소상공인 지원기관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개인이 사기를 당한 것인데 왜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를 삼느냐라는 의견이 있지만 제도적 결함으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것을 관리해야 될 정부의 책임도 있는 것"이라며 "관련 유관기관과 정부부처에서도 나서서 주어진 권한과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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