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3자배정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이 ‘기업사냥꾼’ 등 불공정거래에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상증자 등의 납입일을 증자 발표일보다 수개월 늦게 잡아 주가 흐름을 보고 신주 취득 여부를 결정하는 식입니다.
3자배정 방식은 공모와 달리 자금 납입일에 대한 제한이 없습니다. 더구나 발행가격은 납입일 당시의 시가에 영향을 받지도 않죠. 일부 상장 기업들은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을 노리고 있는데요. 감독당국은 이를 인지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3자배정 제도 허점 파고든 상장기업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우딘퓨쳐스(227610)는 오는 18일 발행주식총수(2367만6618주)의 18.67%에 해당하는 442만1563주의 신주가 상장될 예정입니다. 앞서 예고했던 7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납입이 이뤄진 데 따른 것으로 발액가액은 1651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신주발행이 완료되면 최대주주 역시 나종국씨로 변경될 예정인데요. 결과적으로 나종국씨는 시가대비 저렴한 가격에 회사를 인수하게 됐습니다. 유증 결정 이후 납입일 사이에 주가가 급격히 올랐기 때문인데요. 납입일(7월28일) 기준 평가차익은 99.27%에 달합니다.
아우딘퓨쳐스의 새로운 최대주주가 될 나종국씨가 저렴하게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3자배정 증권 발행의 특이성 덕분입니다. 3자배정 방식은 회사가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제3자에게 기업의 신주 등을 발행하는 건데요. 공모방식과 달리 유증 발행가격이 납입일 당시의 시가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공모 유증(CB)의 경우 증권신고서 제출 등으로 일정이 수개월 이상 지연되더라도 공모 당시 발행가(전환가)는 최근 주가와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됩니다. 유증 결정 당시 주가로 예정발행가를 결정하고, 납입 수개월 전부터 주가에 맞춰 1~2차, 확정 발행가액을 산정하죠. 확정 발행가액 결정 전 주가가 급격하게(기준가 대비 40% 이상) 상승할 경우 최종 발행가액은 최근 주가에 맞춰 결정됩니다.
업계에선 일부 상장 기업들이 3자배정 유상증자 등 증권발행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유상증자 등 투자유치를 호재로 주가를 띄우고 납입일과의 시차를 둬 저렴하게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늘리는 방식입니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질 경우 납입자의 납입 능력 등을 이유로 증권발행을 철회할 수도 있죠.
시가 무시한 발행가…최대주주 등에 유리한 3자배정
앞서 아우딘퓨쳐스는 지난해 12월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요. 해당 유증이 본격화한 것은 최대주주인 최영욱 대표가 구봉산업 측에 공동 경영을 위한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한 지난 3월부텁니다. 이후 경영권 양수도 계약 대상자가 구본산업에서 나종국씨로 바뀌는 등 납입일이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아우딘퓨쳐스는 지난달 2차전지 관련주로 언급되며 급등세를 보였는데요. 최현수 대표와 함께 나현수씨가 각자대표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각자대표를 맞게 될 나현수씨는 2차전지 관련 비상장기업인 갑진에서 팀장 직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2차전지 관련주로 언급되면서 아우딘퓨쳐스의 주가는 작년 6월 1700원 수준에서 지난달 4695원까지 오르며 2배 이상 급등했죠. 주가가 급등했지만, 유증 발행가액은 지난 3월 기준인 1651원으로 결정됐습니다. 4개월 주가 변동은 반영되지 않은 거죠.
3자배정 신주발행 등이 납입일 시가의 영향을 받지 않아 저렴하게 신주를 받아간 곳들은 아우딘퓨쳐스 외에도 많습니다.
최근 사명을 변경한
스피어파워(203690)(전 프로스테믹스)는 지난 5월 총 414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CB 발행 등을 결정했는데요. 이후 주가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신주 발행 결정전 3200원 수준이던 주가는 지난달 8750원까지 오르며 2배 이상 올랐죠.
주가가 급등했지만, 이전에 결정했던 주가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5월31일 결정했던 30억원 규모 CB는 납입일이 7월12일로 1개월 이상 늦게 설정됐는데요. CB 발행 결정 당시 발행가액인 3886원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납입일 기준(8030원) 평가차익만 106.64%에 달하죠. 아직 납입이 완료되지 않은 394억원 규모의 유증과 CB역시 5월 주가를 기준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기업사냥꾼' 등 세력 악용 우려
전문가들은 현행 3자배정 증권발행이 최대주주 등에게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지적합니다. 현행 제도상에선 증권발행 결정 당시 기준주가 산출 방식 등을 제외한 대부분을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3자배정 방식의 경우 1년의 보호예수 등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마련됐지만, ‘기업사냥꾼’ 등 특정 세력이 악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투자유치 이후 호재 발표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다면 보호예수 등의 리스크도 최소화할 수 있죠. 주가가 오른 사이 보호예수가 해제된 과거 발행 CB 물량들을 처분해 차익도 챙길 수 있습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증을 결정 이후 납입일까지의 기간이 길어진다면 주가 추이에 따라 납입 여부를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며 “최대주주 등 내부자나 특정세력이 악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특정인을 대상으로 유증을 결정한 이후 주가가 오르면 투자조합 등이 기존 구주 물량을 처분하고 유증을 통해 다시 저렴한 가격에 획득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소액주주들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금감원은 제도의 허점을 인지하면서도 현행 제도상 당장 마땅한 방법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 발행 등의 경우 현행제도에서 이사회 개최일을 기준으로 발행가액을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통상적으로 이사회 개최 이후 발행일정이 시작되고 납입일까지의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는 “납입일이 늦어져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문제점 등을 내부적으로 확인해보고 살펴볼 계획이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증권발행 관련 문제점들은 금융위 등 관계기관과 함께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고 부연했습니다.
(사진=뉴시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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