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금리 오르자 유상증자가 잇따라 주주 진통을 겪는 속에 이번엔 제주항공이 판을 벌렸습니다. 일반주주에겐 참여기회조차 없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면서 총수일가 지분만 늘어나는 결과도 초래합니다. 유증 자체로도 기존 주주 주권 희석 문제가 있는데 비상장사 현물출자로 신주와 교환하는 터라 주주 반발이 있습니다.
26일 제주항공 등에 따르면 이번 증자 후 AK홀딩스는 제주항공에 대한 지분 기존 50.39%에서 50.37%로 미미하게 줄어듭니다. 제3자 배정 후 신주를 받게 되는데도 지분이 희석되는 결과입니다. 이유는 애경자산관리에 있습니다. 최대주주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49.17%를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특수관계인을 더하면 총 100% 지분입니다. 사실상 채형석 부회장 개인회사인 애경자산관리는 이번 유증으로 제주항공 지배력을 키웁니다. 이 회사는 증자 후 제주항공 지분이 기존 1.01%에서 3.22%가 됩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증시 폭락 당시 유상증자를 단행한 상장사가 많았습니다. 일반주주는 증시 부진에 유증 부담까지 주저됐지만 지배주주에겐 기회였습니다. 실제 지배주주가 유증 참여해 저렴한 가격에 신주를 산 뒤 지배력을 늘린 사례가 많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주항공도 유증 참여 비용이 저렴합니다. 제주항공은 최근 10년 내 장중 최저가가 8372원이었습니다. 전날 종가는 1만1000원이었습니다. 지난 2월 연내 최고가인 1만7320원도 찍었지만 이후 내리막이 가팔랐습니다.
근래 금리가 오르자 기업들이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를 빈번히 쓰면서 일반주주와 마찰을 겪고 있습니다. 제주항공의 경우 시가가 없는 비상장사(에이케이아이에스)와 신주를 맞바꾸는 형태라 일반주주에겐 더 불리합니다. 현물출자 가액은 법원 심사를 거치지만 회사가 제공하는 재무제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유증은 신규 자금을 조달하는 목적입니다. 하지만 현물출자는 당장에 현금이 늘어날 효과도 덜합니다. 기본적으로 유상증자는 일반주주의 기회손실을 부릅니다. 증자 불참 시 지분이 희석되고 참여하기엔 출자금 부담이 있는 기회비용을 안습니다. 제3자배정의 경우 아예 그런 참여기회조차 없다는 지적입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물출자로 유상증자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금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하는데 현물출자로 하는 것은 하나의 꼼수라고 볼 수 있다. 본인들의 집에 끈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방안이 아니고 주주들에게도 손해가 된다"고 논평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제3자 유상증자를 주총 결의 또는 2/3 결의로 해야하도록 상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습니다.
제주항공 측은 “애경그룹 내 IT서비스 회사인 에이케이아이에스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효과”를 강조했습니다.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설명입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