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산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두 정상은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이해를 더욱 명확히 할 것이다. 첫째, 미국과 중국은 역사상 가장 치열한 라이벌이 될 것이다. 둘째, 각 국가의 생존에는 다른 국가의 어느 정도 협력이 필요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5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전날,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미국의 유력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내셔널인터레스트'에 쓴 "제3차 세계대전 피하기: 조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의 실제 내용(Avoiding World War III: What the Joe Biden-Xi Jinping Summit Is Really About)" 기고에서 미중 정상회담 내용을 이렇게 분석·전망했습니다.
"두 강대국 간 무제한 전쟁, 미중에 재앙"
국방장관 특별보좌관과 국방부 차관보를 역임했고, '투키디데스의 함정'론으로 저명한 그는 이 글에서 "둘 다 이 두 강대국 사이의 무제한 전쟁이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며 이렇게 썼습니다.
15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 우발 충돌을 억제·관리하기 위한 군사대화를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군대군(軍對軍) 대화'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시 주석이 화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미중 정상간 핫라인도 복원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현재 공석인 국방부장을 새로 임명하는대로 미국 국방 장관과 만나기로 하는 등 군 고위급 소통을 재개하고, 양국 군의 고위급 소통,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전화통화 등도 재개됩니다.
반면 미중 간 최대 갈등 현안들인 양안 문제와 반도체 분야 등에 대한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문제는 확실한 이견을 유지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중국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레드라인과 마지노선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레이엄 교수의 예상대로 두 정상은 치명적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문제로 끊긴 군사 분야 대화 채널을 우선 복구한 겁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중국 관변 매체들은 "중미관계 앞날이 밝다"고 논평했습니다. 이례적입니다.
중국 관변매체들 "중미 앞날 밝다" 이례적 논평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습니다. 전날 정상회담 장소인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면서 "우리는 중국과의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더 좋게 바꾸려는 것"이라고 자락을 깐 겁니다. 단기적으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진 상황에서 내년 11월 대선을 치러야 하는 그로서는 대중(對中) 상황 관리가 절실하지만, 보다 큰 차원의 전략적 노선도 이미 공개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당분간 세계 무대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번영하고 안전한 국제 질서, 즉 미국과 우방의 이익을 보호하고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는 질서를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련 붕괴와 같은 혁신적인 최종 상태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이득을 얻겠지만 중국도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키맨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말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미국 파워의 원천-변화된 세상을 위한 외교정책'(The Sources of American Power-A Foreign Policy for a Changed World)의 일부입니다. (관련기사:
미국 "중국과 경쟁, 소련 붕괴 같은 결과 기대 안해" 공식선언…우리는?)
물론 내년 1월에 총통 선거가 예정된 대만 문제와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중국 배제)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 중국 공급망 의존에 대한위험 제거)은 미국도 확고하게 쥐고 가겠다는 겁니다. 특히 경제안보 분야에서 안보와 직결되는 첨단반도체 분야에 대한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은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해 미국으로서는 내놓을 수 없는 겁니다.
정상회담 뒤에 공동선언문도 발표되지 않았고, 공동기자회견도 없었습니다. 또 정상회담이 끝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을 '독재자'로 호칭하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미중 관계가 '차이메리카'(Chimerica·China + America)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던, 탈냉전기의 경제적 공생 관계까지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임을 예상케 하는 단면들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도 대선 레이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열세인 바이든 대통령이 대중(對中)관계에서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미중, '갈등 일변도→갈등·경쟁' 협력 교차 조정기
상황을 종합해보면, 확실한 것 하나는 미중 관계가 트럼프 정부 시절이나 바이든 정부 초기처럼 갈등 일변도가 아니라 갈등·경쟁과 협력이 교차하는 조정기에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이제 문제는 한중 관계입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계기로 만들어진 자리로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어 한중 정상회담 성사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성사된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처럼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담한 것처럼 1년 만에 정상회담을 하게 됩니다. 당시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25분간 회담한 바 있습니다. 현재까지 정부는 "협의 중이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성사된다 해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5월 중국 외교부 국장이 우리 외교부에 통보했다고 해서 논란이 된 이른바 '4불가(不可)론'(△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 한중 협력 불가 △한국이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 정책으로 나아갈 경우 협력 불가 △현재와 같은 한중 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불가 △악화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가)이 실제 현재 중국의 한국에 대한 기본 외교 방침이라는데 다수 전문가들이 일치하고 있습니다.(정부는 통보 사실 자체가 없다고 극력 부인한 바 있습니다.)
"중국, 한국과는 협력보다 위기관리 측면 더 높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등은 시진핑 주석의 내년 방한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지난 9월 말 중국 예니에서 만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중국 내에서는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책과 행태들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방한하는 것은 오히려 중국에 부정적 효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한국과는 협력보다는 위기관리 측면이 더 높다'고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중국 사정에 밝은 복수의 국내 중국 전문가들도 "여전히 중국 내에서는 시 주석의 방한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하다"고 전합니다.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방중설이 나오기도 합니다. 북한으로서는 코로나19 국면이 끝나가면서 중국과의 본격적인 경제 협력·지원이 필요하고 중국으로서는 북러간 밀착 등에 대한 상황관리가 필요한 국면이라는 겁니다. 현재까지 김 위원장은 2019년 1월에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했고 시 주석은 같은 해 6월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바 있습니다.
미중 관계 개선은 현재의 한중 관계는 물론 극도의 긴장관계인 한반도의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부분은 윤석열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부는 한미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강고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강고한 한미관계를 유연하게 활용해 한중관계 개선에 나서야 할 때가 됐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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