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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는 없다. 현실과 상황이 의지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확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도 현실과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를 꺾는 경우가 많다. 현실이 의지를 지배하는 순간 모두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더 확실하다. HMM(옛 현대상선) 인수를 앞두고 있는
하림(136480)그룹에 대한 이야기다.
하림그룹이 계열사
팬오션(028670)을 앞세워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011200)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면서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비단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라는 단순 비유로 표현할 수 없는 함의가 이번 인수전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고 또 다른 고래로 변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새우는 ‘승자의 저주’에 빠져 고래를 다시 토해내거나, 고래가 망가질 수 있다. HMM은 국내 유일 글로벌 선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서울 여의도 HMM 본사 사무실 내부 전광판에 HMM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먼저 업계에서는 하림그룹이 인수금액 6.4조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인수 주최인 팬오션이 보유한 현금성자산(5700억원 규모)과 영구채 발행(5000억원), 사모펀드 운용사 JKL파트너스(7000억원) 등을 합해도 1조8000억원이 안되는 규모다. 이외 나머지 4.7조원은 외부 차입과 유상증자 등으로 조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부 차입과 유증 비율을 얼마로 맞추느냐만 남아 있는 상태다.
아울러 차입에 따른 금융비용을 팬오션이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팬오션이 유증을 통해 원하는 금액을 끌어오지 못할 경우 차입금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3조원을 차입으로 조달할 경우 매년 1500억~2000억원 정도의 이자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팬오션이 HMM에서 받는 배당금을 통해 이자비용을 충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향후 3년간 연간 배당금 5000억원 제한’ 등 규제하고 있지만, 팬오션이 감당해야 될 이자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 기준이라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HMM이 올해 3분기 기준 보유한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이 10조원이 넘는다는 점에서 업계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팬오션에 위기가 오면 자회사인 HMM이 보유한 현금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운업계 불황이 예정돼 있다는 점도 우려의 목소리를 키우는 지점이다. 올해 3분기부터 세계 2위인 덴마크 머스크가 적자로 돌아섰고, HMM보다 몸집이 작은 10위 이스라엘 짐라인, 11위 대만 완하이는 2분기부터 적자전환했다. 경기 사이클을 타는 해운업의 특성상 한번 불황에 빠지면 장기간 이어진다. 팬오션과 HMM의 장밋빛 전망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하림그룹은 입장문을 “HMM이 보유한 현금자산은 현재 진형형인 해운 불황에 대응하고 미래 경쟁력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게 하림그룹의 확고한 생각”이라며 “MSC와 머스크 등 글로벌 해운사들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해운 불황에 대비하고 있다. 이들에 비해 선대 규모 및 보유 현금이 월등히 적은 HMM은 불황에 대비하며 경쟁력을 키우는데 보유 현금을 최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하림그룹의 경영 행태를 살펴보면 이런 우려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림그룹은 과거 주요 계열사인 NS쇼핑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하고, NS쇼핑 지주회사를 하림지주와 합병하면서 NS쇼핑 자회사인 하림산업 등 알짜 자산을 하림지주로 귀속시킨 바 있다. 특히 일련의 과정은 하림산업이 보유한 양재동 '파이시티' 부지에 대한 개발이 탄력을 받으면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크게 비난받은 바 있다.
여기에 하림그룹은 앞으로 돈 들어갈 길이 더 남아 있다. 하림그룹은 향후 6조8000억원 규모의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부지 개발에 시동을 건다. 서울시가 조건부로 개발사업 심의를 통화시키면서 사업 진행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림그룹은 앞으로 이 사업에 대한 자금도 마련해야 되는 상황이다. 줄줄이 돈 들어갈 일만 남은 상황에서 하림그룹이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림그룹은 시장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지만, 현실과 상황은 녹록지 않다. 실제 우려하던 상황에 내몰리면 HMM이 보유한 현금에 눈길이 안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하림그룹이 HMM 인수 전 약속한 내용을 끝까지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 기업 인수가 마무리되면 주인이 주인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업계의 우려에 대한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용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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