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워렌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가 사상 최대규모로 현금을 쌓았습니다. 미국의 주가가 비싸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현금비중을 늘리는 와중에도 옥시덴탈 주식을 추가 매수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말 버크셔는 지난해 373억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년보다 약 21% 증가한 실적입니다.
현금 늘렸지만 주주 불만 없어…자본 적재적소 배치
하지만 이익 증가보다 더 화제가 됐던 것은 천문학적으로 쌓인 현금입니다. 버크셔의 현금보유고는 사상 최대치인 1676억달러로 불어났습니다. 한화로 약 223조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보탠 이익도 있지만 보유 주식을 매도하면서 현금을 늘렸습니다. 버크셔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분기 연속으로 증가했습니다.
현금이 계속 늘고 있지만 버크셔의 주주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미국의 금리가 여전히 높기 때문입니다. 버크셔는 지난해 9월말 기준 미국 단기국채를 1250억달러 이상 보유하고 있어 이자수입이 쏠쏠합니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보험도 금리 상승으로 이자수입이 늘었습니다.
버크셔의 현금 증가는 현재 미국 증시가 과열돼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월가에선 버크셔가 기회가 생길 때 쌓아둔 현금으로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지분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버핏은 시장에 살 만한 주식이 없을 때 자사주를 사들이곤 했습니다. 버크셔의 이익률이 다른 데 투자하는 것보다 높은 경우 자사주를 매수해 소각하는 것이 주주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약 70억달러어치 자사주를 매입했습니다.
이처럼 버핏과 버크셔 경영진들은 자본을 최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해 항상 돈이 최대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옥시덴탈 추매, 미국 에너지 패권에 투자
엄청난 현금보유고 외에 또 하나 관심거리는, 버크셔가 주식을 팔아 현금을 늘리는 와중에도 추가로 매수한 주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옥시덴탈페트롤리엄(이하 옥시덴탈, 종목기호 OXY)과 셰브론(CVX) 등 정유기업입니다. 특히 옥시덴탈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옥시덴탈은 미국과 중동, 남미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지난해 실적은 눈에 띄게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2022년 135억달러 영업이익이 지난해 61억달러로 크게 줄었으니까요. 하지만 2019년, 2020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을 당시에 비하면 안정적인 이익 구조로 변신한 것은 분명합니다.
버핏은 올해 주주들에게 보낸 주주서한에서 옥시덴탈을 추가 매수한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미국 내에 상당한 석유와 가스(유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과, 아직 입증되진 않았지만 탄소 포집 분야에서 선도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국이 과거 중동 등 주요 산유국들에 비해 에너지 분야가 취약했으나 셰일 혁명 후 안정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열거했습니다. 미국이 에너지 패권 경쟁에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 정유업체들의 실적에 큰 보탬이 됐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옥시덴탈·일본상사 주식 무기한 보유”
버핏이 투자한 일본 5대 상사들의 주가도 고공행진 중입니다. 버크셔는 2020년 8월에 일본 상사 5개 기업의 주식지분을 5%씩 매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에도 주식을 추가 매수했습니다.
팩트셋에 따르면, 2020년 8월28일 이후 일본 상사들의 주가는 최저 185%(이토추)에서 최고 402%(마루베니)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 상승률 53%에 비해 월등한 기록입니다.
주가 상승에 따른 버크셔의 평가이익도 상당합니다. 현재 5대 상사 지분을 각각 9%씩 보유 중이며 작년 말 기준 평가이익만 80억달러에 달합니다. 올해 들어서도 이들의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에 평가이익도 불어나는 중입니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새로운 수장이 될 그렉 아벨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5대 상사의 CEO를 만난 사실이 알려졌는데요. 이들의 투자지분을 향후 9.9%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버핏은 일본 상사들의 경영에 대해 “경영진에게 적은 보수를 지급하고, 수익의 3분의 1만 배당하며, 막대한 보유현금으로 다양한 사업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자기주식을 사들이는 모습이 버크셔 헤서웨이와 닮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버핏은 옥시덴털과 일본 상사 주식을 무기한 유지할 주식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당분간”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만큼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버크셔 헤서웨이는 오는 5월4일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올해에도 전 세계에서 작은 도시 오마하로 몰려드는 주주들이 상당할 전망입니다. 지난해 찰리 멍거 부회장이 타계해 홀로 남은 워렌 버핏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핏은 이번 주주서한을 ‘찰리 멍거-버크셔 헤서웨이의 설계자’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평생의 파트너였던 멍거와의 첫 만남과 그가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상기하는 내용으로 버크셔라는 위대한 건축물을 그가 설계했음을 밝힌 헌사였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