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거부권'…대통령의 '셀프 면죄부'
'채상병 특검법' 재의요구안 재가…취임 후 '10번째' 거부권
2024-05-21 17:14:12 2024-05-21 19:31:21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끝내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10번째(법안 수 기준), 4·10 총선 참패 후 첫 거부권 행사입니다. 자신과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윤 대통령은 '셀프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에 이어 자신과 가족에 대한 방탄 용도로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도 넘은 권력 남용'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이 총선 민의에 역행하는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을 전망입니다. 
 
윤 대통령 겨눈 특검법…스스로 '거부'
 
윤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심의·의결한 '채상병 특검법'을 재가했습니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거친 순직 해병 특검 법률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7월 경북 수해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다 숨진 채 상병 사건의 조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에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이 압력을 행사해 수사 결과를 왜곡하고 수사를 은폐했는지 등을 밝혀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 실장은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에 대해 "특검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며 "이는 단순히 여야 협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을 지키기 위한 국회의 헌법적 관행"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삼권분립 원칙상 특검은 대통령 임명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이번 특검법은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해 대통령의 특검 임명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했고 이는 우리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을 위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도 이유로 들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번에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취임 후 10번째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된 겁니다. 앞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총 7번 거부권을 행사했고, 그다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총 4번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부터 시작해서 이날 채상병 특검법까지 총 10개 법안을 거부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 앞 계단에서 열린 채상병 특검법 재의 요구 규탄 야당,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해충돌 사안에 거부권…야 일각 "탄핵 사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정치권은 '강대강 대치' 정국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주당은 당장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한 대응으로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현직 국회의원과 제22대 총선 당선자들이 총집결한 규탄대회를 열었습니다. 민주당은 또 22∼23일 당선인 워크숍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규탄 성명을 채택할 예정입니다. 오는 25일에는 민주당을 포함한 7개 야당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범국민대회를 열어 장외 투쟁을 벌입니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자체가 위헌 소지가 있다며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빈번한 거부권 행사는 위헌 소지가 크다"며 "대통령 자신과 배우자의 수사를 막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적 한계를 넘어선 위헌적 권한 행사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거부권 행사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입법권한을 남용해 행정부 권한을 침해할 경우 최소한의 방어권이 재의요구권, 즉 거부권”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라며 "(윤 대통령이) 협치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협치가 잘 안 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협치의 의미가 훼손되면서 향후 야당과의 관계에서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거부권 행사 후 법안이 국회로 되돌아오면 오는 28일 재표결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이 이번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22대 국회 개원 즉시 최우선 처리할 방침입니다.
 
그간 민심은 윤 대통령의 채상병 특검법 수용에 힘을 실었습니다. 앞서 지난달 23일 공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4월20~21일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무선 ARS 방식)에선 전체 응답자의 65.2%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대했습니다. 반면 23.5%는 거부권 행사에 찬성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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