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저녁 평양을 방문합니다. 애초 북한은 푸틴 대통령에게 6·25 행사 일정에 맞춰 25일 방북을 요청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보다 빨리 평양을 방문하는 건데요. 이는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피하려 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방북에서 나올 북·러 간 협력 수준을 가늠하게 합니다. 이런 가운데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서명할 수 있다"고 예고, 협정의 위상과 내용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푸틴 <노동신문> 기고 "북과 서방 통제없는 무역·결제"
푸틴 대통령은 평양 도착에 앞서 18일 오전 북한 관영 <노동신문>에 기고한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연대를 이어가는 친선과 협조의 전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북한과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미국 등 서방의 국제 금융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북한이 미국 중심의 국제 금융시스템과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무역·결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 내용이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올해 5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중·러 간 결제 대금의 90%가 루불과 위안화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해, 달러 결제 시스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북·러가 군사 협력 수준을 어느 수준으로 강화할지도 주목됩니다. 북·러는 1961년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에서 '자동개입'을 명시해 군사동맹 관계를 공식화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에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고 이어 소련을 이은 러시아가 1996년에 파기했습니다. 2000년 푸틴 대통령의 방북 때 나온 '조로공동선언'(평양선언)에서도 '자동군사개입'이 아닌 '지체없이 서로 접촉할 용의를 표시한다" 는 정도로 정리됐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북·러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최선희 외무성이 "두 나라 관계를 전략적인 방향에서 새로운 법률적 기초에 올려세우는 데 합의했다"고 밝히고, 최근 용산 대통령실도 '자동군사 개입' 조항 회복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바 있습니다. 북한이 이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자동군사개입'은 미국의 대외 동맹 중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맺은 집단방위보장조약에만 명시돼 있을 뿐 한·미 동맹과 한·일 동맹에도 없는 조항입니다. 북한과 중국 간 '조·중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1961년)에는 자동개입 조항이 명시돼 있으나, 실제 효력 유지 여부를 놓고는 논란 중입니다.
이처럼 '자동군사개입'은 동맹의 가장 강력한 형태라는 점에서, 북·러가 실제 이를 회복할 경우 한·러 관계에서는 레드라인(한계선)이 될 가능성이 높고, 중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 자극하면서 국제 안보 지형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북·러, '유사시 긴밀 협의' 수준서 합의할 듯
이와 함께 푸틴 대통령이 지난 5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공급을 하지 않은 점 등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관계 회복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고, 이번에도 한반도에서 상징성이 큰 6월 25일을 피해서 방북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자동개입 조항' 회복보다는 "유사시 즉각적이고 긴밀하게 협의한다"는 수준이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한·미·일도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은 지역의 안보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 공동협의를 하도록 하는 의무조항을 명시한 바 있습니다.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는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러시아 쪽이 예고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자체가 군사동맹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협정에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21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정찰위성과 핵무기 기술 이전 문제도 심각한 사안입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도 지난 14일 공동선언에서 러시아의 핵과 탄도미사일 관련 기술이 북한에 이전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한·러 '전략적 협력 동반자'보다 높은 수준
러시아 측이 예고한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일단 표현상으로는 한·러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보다는 높은 수준입니다. 러시아는 인도와는 '특별하고 특권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중국과는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교가에서 상대국과의 관계 규정 표현은 공통된 기준이나 원칙이 정립돼 있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포괄적'은 가치 공유, '전략적'은 정치·군사·안보·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라는 뜻으로 통용됩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자신이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나 오는 7월3~4일 열리는 중국 주도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옵서버(참관국)로 참여시키려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황방열 통일·안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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