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국민의힘 차기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고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가 확인되면서 윤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인데요. 윤 대통령을 직접 겨눈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시작으로 용산과 차별화에 나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오를 경우 윤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이 가속화된다는 뜻입니다. 친윤(친윤석열계)계가 사실상 윤심(윤 대통령 의중) 후보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낙점했지만, 총선 참패 이후 당 장악력이 축소하면서 아직까진 역부족인 모양새입니다. 다만 선거가 한 달여 남은 만큼 친윤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 결집'이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22일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거행된 제9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마친 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대통령 '역린' 건드린 한동훈 …내부선 "반윤 넘어 절윤"
27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 흐름을 종합하면, 나경원 의원·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윤상현 의원·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가나다 순) 등의 출마로 '4파전'이 형성됐지만 실제 흐름은 '1강 2중 1약'으로 고착화된 모습입니다.
어대한의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는 한 전 위원장을 1강으로 나 의원과 원 전 장관이 2중, 윤 의원이 1약인 건데요.
이 같은 흐름에 고심이 깊어지는 건 윤 대통령입니다. 한 전 위원장은 출마와 동시에 조건부로 채상병 특검법을 제안하고, 김건희 여사 의혹과 관련한 해법으로 특별감찰관 도입과 제2부속실 설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역린'을 건드린 셈입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관련해 언론 인터뷰에서 "특검 수용을 공언한 한 전 위원장은 '반윤' 수준을 넘어선 '절윤'"이라며 불편함을 드러냈습니다.
문제는 대통령실 주도로 1강 구도를 뒤집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입니다. 이날 공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138차 정기 여론조사 결과(지난 24∼25일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무선 자동응답)에 따르면 '누가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32.4%가 한 전 위원장을 꼽았습니다. 이어서 나 의원이 14.9%, 원 전 장관이 9.6%, 윤 의원이 7.4%로 조사됐습니다.
국민의힘 책임당원 40%가 몰려있는 대구·경북(TK)에서도 한 전 위원장은 45.4%의 지지를 받으며 압도했습니다. 나 의원은 17.2%, 원 전 장관은 7.9%를 기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됩니다.)
원 전 장관은 당초 예상과 달리 '깜짝 출마'에 나선 바 있는데, 대통령실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불리는 이용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원 전 장관을 지원하면서 '찐윤' 후보라는 점은 기정사실화 됐습니다.
하지만 2021년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이준석 당시 대표를 윤리위원회를 통해 '축출'하고, 친윤 주류 세력을 통해 '김기현 체제'를 옹립했던 당시와는 차이가 분명합니다.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이 민심과 당심을 등에 업고 7·23 전당대회에서 당선되면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당 안팎에서도 총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보인 '윤·한 갈등'이 결국엔 다시 재연될 수밖에 없으며 자칫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대표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한 전 위원장이 당선되더라도 3년의 임기가 남아있는 만큼 '윤·한 갈등'에 속도조절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결국에 (둘 사이의)장력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빠른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 전 위원장과의 공존하는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26일 대구시청 사격청사를 찾아 홍준표 대구시장과 면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수 본진 '영남 표심'…전대 판세 '승부처'
다만 한 달가량 남아있는 전당대회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번 전당대회 룰은 당원 투표 80%에 일반 국민 여론조사 20%인데요. 결국엔 영남권 표심이 '승부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원 전 장관 역시 이를 고려한 듯 연일 TK와 부산·울산·경남(PK) 일정을 돌며 당심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박상병 정치 평론가는 "당내 주류 의원들은 여전히 영남 의원들"이라며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영남권 의원들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반한동훈의 중심에 서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도 지난 26일 원 전 장관과의 면담에서 "만약 이번 전당대회가 잘못되면 윤석열 정권에는 파탄이 올 것"이라며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이미 국민으로부터 레임덕으로 몰려가고 있는데, 당내 선거에서도 이상한 사람이 당선되면 정부 여당이 같이 몰락한다"고 했습니다. 한 전 위원장을 직접 겨냥한 발언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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