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AI 인재 확보를 못하면 수년 안에 제조 경쟁력까지 무너지면서 한국경제도 힘들어질 수 있다.”
대한민국의 AI 인재 현주소를 묻자, 국내 대기업 임원들과 전문가들은 인력 부재가 지속될 시 제조 경쟁력이 타격을 입고 이것이 결국엔 한국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제조, 비제조 영역할 것 없이 모든 산업에 AI가 침투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AI 시장 규모는 2032년까지 연평균 19% 성장해 약 2조5751억달러(약 3580조6765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거센 AI 파고에 세계가 인재 양성 및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하지만 한국은 ‘인재풀’이란 단어가 무색한 상황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그나마 있던 인력마저 글로벌 빅테크에게 뺏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AI 연구기관인 엘리먼트 AI가 내놓은 ‘글로벌 AI 전문 인재보고’를 보면, 한국의 AI 인재 현주소는 암울한데요.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AI 전문 인재는 47만7956명인데, 이중 한국이 보유한 인력은 2251명(0.5%)에 그칩니다. 1위는 오픈AI, 구글, 메타 등이 있는 미국에 18만8300명(39.4%) 인재가 몰려있습니다. 한국은 인도(7만6213명), 영국(3만5401명, 중국(2만2191명)에도 한참 못 미칩니다. 국가 별로 줄 세우면 한국은 30개국 중 22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발간한 ‘국내 AI 산업 실태 보고서’만 보더라도 국내 AI 인력 부족 현상은 계속해서 악화되는 추세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AI 부족인력은 8579명에서 전년(7841명) 대비 8.6% 증가했습니다. AI 시장 확대로 필요 인력은 느는데 인재가 없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로 풀이됩니다.
IT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네이버나 카카오에나 개발자가 포진해있고, 이들마저도 기존 학부시절 컴퓨터공학 등에서 데이터를 다루다가 입사해서 AI 영역이 추가되는 업무를 맡는 것”이라며 “국내 AI 전문 인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I 인력 부족에 보안 우려도 '고개'
AI 인력 자체가 모자라는 상황 속 AI 보안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는데요. AI 전문 인력 자체가 적다보니 증가하는 AI 사이버 해킹을 대응할 수 있는 인력 확보가 어려운 까닭입니다. 이 같은 어려움은 기업이나 정부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AI 보안은 국가적 차원에서 해킹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후발주자인 한국은 현재로선 AI 기술 발전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이 대체적입니다.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취임 초 ‘사이버 보안 10만 인재 양성’을 공언한 바 있는데요. 과기부 산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8년째 운영하고 있는 ‘시큐리티짐’도 그 일환입니다.
시큐리티짐은 실제 발생했던 해킹 사건을 분석하는 단기간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예를 들어 해킹 사고 환경을 구축해 침해사고를 조사하고, 공격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등을 훈련하는 교육 과정입니다. 하지만 3~5일로 이뤄지는 단기적 교육 프로그램 이수만으로는 ‘AI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란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AI 인재든 AI 사이버 보안 인재든 전문가들은 진정한 ‘AI 전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선 시간과 시스템이 ‘관건’이라고 지적합니다. 박동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은 유치원 때부터 AI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만들어졌다”며 “하루에 몇 시간 AI 수업을 들은 이들이 경쟁이 되겠냐”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AI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선 이르면 유치원 때부터 AI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AI 인재양성, 시간과 시스템이 관건"
한국경제인연합회(한경협)가 박 연구위원에게 의뢰해 작성한 ‘한미중 AI 인재 확보 전략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01년부터 정보기술 과목을 의무교육으로 설정했고, 교육도 한국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을 편성해 실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초·중에서 각각 68시간 이상, 고등학교 70~140시간을 정보기술 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또 2018년부터 정보교육 내용을 소프트웨어(SW) 중심에서 AI로 확장하고, 생애주기별 AI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AI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미국은 2021년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법’을 통과시켜 컴퓨터 과학 교육을 확대하려는 주 또는 지방 교육기관에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담당 교사 확보를 위해 2011년 이니셔티브를 수립하고, 2016년에는 4억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늦었지만 한국도 AI 기술 개발 기초단계인 코딩 교육을 내년부터 시작합니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코딩’ 교육을 의무화합니다. 초등학교는 34시간, 중학교는 68시간의 수업을 듣게 됩니다.
보고서는 또 미국과 중국이 AI 인재 양성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갖춘 것과 비교해, 한국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4개 부처가 산발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는데요.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정부도 최근 AI 컨트롤타워격인 과학기술수석실 산하 AI·디지털비서관을 신설했습니다. 다만 그 역할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박 연구위원은 “AI 경쟁력은 사람인데 한국에는 AI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 3000명 안팎”이라며 “뼈아프지만 한국은 세계 AI 분야에선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조금 늦었지만 미국이나 중국처럼 초중고 교과목에 AI 수업을 넣고 그 시기도 앞당길수록 우리 사회에 가져올 효과는 크고 분명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랜드마크인 구형 공연장 '스피어'에 전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아우라(Aura). (사진=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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