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K플랫폼으로 대두되는 국내 플랫폼 산업에 ‘규제’라는 높은 파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 양쪽에서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인데요. AI(인공지능) 시대 갈 길이 멀지만 조여오는 규제 그림자로 플랫폼 산업의 신 시장 개척은 주춤할 공산이 커졌습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플랫폼 관련 규제법안은 총 5건입니다. 21대 국회에서 플랫폼 규제 법안을 발의했던 박주민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입니다. 내용은 대동소이한데요. 크게 플랫폼 기업을 사전지정해 규제하고 갑을 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특히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 및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안
’과 김남근 의원이 대표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
’을 비교해 살펴보면 사전지정의 기준이 되는 평균 시가총액 또는 공정시장가치 금액이
30조원과
15조원으로 다를 뿐 대부분의 내용이 유사합니다
. 이에
15조원의 시가총액이 적용된 법이 제정될 경우 국내 대표 플랫폼인 네이버(
NAVER(035420))
(28조
4000억원
)와
카카오(035720)(17조
5400억원
)는 사전지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네카오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김남근 민주당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온라인플랫폼법 발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위, 멈춰섰던 ‘플랫폼법’ 재시동 움직임
과거 플랫폼 업계의 반발에 멈춰 섰던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도 최근 다시 시동에 걸린 모습입니다. 공정위의 플랫폼법은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소수의 독과점 플랫폼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하고 끼워팔기·자사우대·최혜대우 요구·멀티호밍 제한 등 4대 반칙행위를 규율하는 제도입니다. 지난해 12월 추진 계획을 밝힌 뒤 업계의 거센 반발에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었는데요. 최근 공정위는 각계 전문가와 학계와 접점을 넓히고 토론회 등에 참석해 의견을 들으며 법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사진=뉴시스)
플랫폼법 제정, 혁신·성장 동력 상실 우려
플랫폼법 제정과 관련, 국회와 정부의 움직임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입법이 완료되면 국내 플랫폼 산업의 성장은 물론 혁신마저 옥죌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업계는 크게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정해 잠재적 위협 요소로 인식(사전지정), 현행 공정거래법 등으로 과징금 등 규제를 할 수 있음에도 또 하나의 규제 장치 마련(이중규제), 해외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점(역차별) 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이 같은 점을 지적하는데요. 국회 입법조사처 현안분석 보고서는 공정위의 플랫폼법과 관련해 “사전 지정하는 방식의 규제 도입 필요성 또는 시급성이 분명하지 않다”라며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지정은 ‘남용행위 잠재기업’을 사전에 정하는 소위 ‘낙인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플랫폼 사업자가 스스로의 성장 기회를 포기하도록 유인하는 한편, ‘민간자율 존중 원칙’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업계는 또한 공정위가 플랫폼법을 두고 업계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요. 사전지정 대상이 될 기업은 물론 협·단체에도 플랫폼법과 관련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없이 법안 마련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법안을 너무 빨리 추진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고 공정위가 어디서 누구랑 소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가 조사·분석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런 피해들이 발생한다는 등 근거를 마련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그냥 법을 만들기 위한 작업밖에 안하고 있다”라며 “플랫폼 산업에 아주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인데 왜 이렇게 진행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플랫폼법과 같은 규제 영향으로 VC(벤처캐피탈)의 투자가 줄어 스타트업 산업 전반을 위축시키고 혁신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습니다.
실제로 최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조사한 ‘플랫폼 투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5조4925억원 규모였던 플랫폼 스타트업 투자는 지난해 1조2486억원으로 급감했습니다. 전체 투자 시장에서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데요. 2021년 3분기 전체 투자 금액의 55.7%에 달했던 플랫폼 투자 비중은 지난해 4분기 8.9%까지 떨어졌습니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현재 국내 플랫폼 스타트업은 고금리 상황의 지속, 시장경쟁 심화와 함께 규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성장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짚었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플랫폼 투자 동향 보고서 (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은데요. 공정위가 ‘자사우대’로 판단한 쿠팡의 과징금 사례와 배민의 중개 수수료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반발 여론, 그리고 최근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몰고 온 소비자 피해 등의 사안으로 플랫폼법 제정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플랫폼 기업 역시 적정한 규제는 필요합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티몬·위메프 사태 같은 정산 관련 문제의 경우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 실패를 반드시 플랫폼법이라는 이름 아래 따로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달립니다. 특정 기업 몇몇을 겨냥한 듯 보이는 플랫폼법이 과연 플랫폼 생태계 전반에 걸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특히나 중국이나 미국 등 글로벌 공룡 플랫폼들의 위세가 점차 커지는 가운데, 설익은 규제는 자칫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업계는 입을 모읍니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이 눌리게 되면 입점해 있는 소상공인과 멤버십 등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결국 피해를 볼 것”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퍼스트 무버(선도) 하겠다고 정부가 말은 하고 있지만 행동은 규제를 만들어 팔로우만 하자는 꼴”이라고 꼬집었는데요. 그러면서 “기업 투자가 안 일어날 텐데 혁신 기업이 어떻게 나오겠나”라며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도태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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