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게임이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책이나 영화가 그렇듯 예술성은 작품별로 판단되는 것이지, 장르로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게임이란 장르에선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재미입니다. 예술성을 구현하더라도 게임 본연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그러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 엑스박스 산하 스토익 스튜디오와 지난달 31일 화상 인터뷰를 했습니다. 스토익 스튜디오는 고품질 애니메이션과 깊이 있는 서사로 유명한 롤 플레잉 게임 '배너 사가(The Banner Saga)'를 제작한 곳입니다. 2025년에는 차기작 '타워본'을 출시해, 예술로서의 게임에 새 기준을 세우려 합니다. 이 게임은 다음 달 10일 스팀에서 미리 해보기(얼리 엑세스)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롤 플레잉 게임 '타워본'을 제작을 이끌고 있는 아니 요르겐센 스토익 스튜디오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 페드로 톨레도 아트 디렉터, 리사 플렉 수석 환경 아티스트. (사진=엑스박스)
타워본 제작진은 전작을 참고하면서도 신작 고유의 예술성을 구현하고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페드로 톨레도 아트 디렉터는 "높은 수준의 아트 퀄리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두고 있다"며 "창조적 비전, 메시지와 목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아트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이라는 장르의 기능적 측면과 기술적 요소에도 적합한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이어 "스튜디오와 프로젝트의 비전에 맞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아트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에, 어찌 보면 저희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든 작업이 예술로 승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타워본 제작진의 목표는 게이머가 '아름다운 장편 영화'에서 플레이하는 느낌을 주는 겁니다. 하지만 완벽한 실사 그래픽을 추구하거나 동화 속 세계를 만드는 데 열중한 나머지, 게임 진행의 이정표나 실마리를 알아채기 어려운 게임들도 분명 존재하죠. 스토익 스튜디오 역시 2D 그래픽으로 기획한 타워본을 3D로 바꾸면서 이 점을 경계해 왔다고 하는데요.
리사 플렉 수석 환경 아티스트는 "전투의 명료성을 유지하면서 쉽게 게임과 상호작용하고,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아트 스타일 간의 균형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며 "조명과 모델, 텍스처 조정, 대비 감소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며 평가하고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니 요르겐센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는 "처음엔 스튜디오 지브리나 영화 '아키라' 같은 작품을 참고하며 기본적인 목표와 비전을 세웠다"며 "그 후 관련 전문가를 계속 영입해서, 이를 바탕으로 수년간 발전시켜 우리 고유의 스타일을 가지게 됐다"고 부연했습니다.
타워본 게임 화면. 제작진은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같은 '배너사가'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3D 요소를 추가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미지=엑스박스)
그렇다면 게임 내 상호작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배경 그래픽과 연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플렉 수석은 "장면에 따라 카메라가 좀 더 클로즈업 할 수 있도록 하거나, 경사를 오르내릴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종류의 스테이지를 추가해 평면적인 좌우 움직임으로 느껴지는 것에서 벗어나, 플레이어들이 미션 중에 훨씬 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게임플레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답했습니다.
톨레도 디렉터는 "전형적인 3D 룩앤필을 연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장면과 화면 구성, 스테이지를 여전히 2D 요소로 인식하면서 3D로 구현하고자 했다"며 "저희의 최종 목표이자 결과물은 인위적인 3D 느낌이 아닌, 마치 그림을 그린 듯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부한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게임 속 장편 애니메이션을 원래 색감으로 즐길 수는 없습니다. 색약을 포함해 다른 시각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게이머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톨레도 디렉터는 "UI(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전투 요소를 검토할 때 색약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접근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게임을 제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타워본 실행 화면. (이미지=엑스박스)
아름다운 그래픽을 뒷받침하는 건 이 세계를 탐험해야 할 이유, 즉 서사입니다. 스토익 스튜디오는 주인공 '에이스'의 죽음이 단순 부활(리스폰)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가 왜 살아나는지에 대한 '서사적 이유'를 부여하게 했습니다.
요르겐센 CCO는 "자세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는 게임 줄거리에서 계속 발전하고 진화하는 미스터리 중 하나"라며 "(현재 버전에서는) 에이스가 죽어서 부활할 때 다른 미션들에 투입된다든지, 다른 플레이 방식이 부여되는 방식으로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에이스의 죽음과 부활은 에이스가 왜 다시 살아나는지에 대한 게임의 서사적인 측면과 더 연관이 있다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스토익은 타워본이 출시 이후 게이머와 함께 완성을 거듭하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요르겐센 CCO는 "특히 기대되는 건, 게임에 대해 플레이어분들이 주시는 피드백이 게임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는 것"이라며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면 플레이어분들의 피드백 덕분에 저희가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게임이 진화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