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한 대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채상병 특검법'(순직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인데요.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친윤석열계)의 반대 기류를 거스르기에도, 보수 텃밭에서도 찬성이 높은 채상병 특검법을 철회하기에도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3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산동읍에 위치한 반도체 소재·부품 전문기업인 원익큐엔씨를 방문해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애매한 입장만 되풀이…철회도 추진도 못해
3일 한 대표는 경북 구미에 위치한 국가산업단지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그가 구미를 찾은 건 전당대회 직전인 지난 7월 이후 약 두 달 만으로 취임 후 대구·경북(TK) 지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대표의 이번 TK 방문 일정은 당내 지지층을 다잡기 위한 행보로 풀이됩니다. 거듭해서 당정 갈등이 수면 위로 표출된 영향이기도 합니다.
한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수평적 당정 관계를 강조해 왔습니다. 그는 당시 검찰의 김건희 여사 방문 조사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윤 대통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의료개혁에 대해서도 '유예안'을 내세웠는데요. 용산과 친윤은 물론 당내 파트너이기도 한 추경호 원내대표까지 한 대표를 막아서며 포위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불편한 사이를 표출하듯 1987년 민주화 이래 처음으로 국민의힘 연찬회와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불평한 동거의 정점은 '채상병 특검법'입니다. 그리고 한 대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는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국민 여론은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지난 5월 28일 공표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신뢰수준 95%·표본오차 ±3.1%포인트·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결과에 따르면 '국회가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63.7%가 "특검법 통과에 찬성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따라 국회 재표결을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였는데요. 보수의 심장부인 영남에서도 찬성 비중이 우세했습니다. TK의 경우 찬성이 47.1% 대 반대 39.1%였고,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찬성 59.6% 대 반대 28.1%였습니다. 한 대표가 전당대회 기간 내내 친윤 후보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은 채상병 특검법을 이제 와서 철회하기 어려운 겁니다.
그렇다고 채상병 특검법을 추진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지난달 13일 추경호 원내대표는 한 대표의 채상병 특검법을 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친윤계를 중심으로 한 비토 역시 반복되고 있으며, 친한계(친한동훈계)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옵니다.
결국 한 대표는 야당의 거듭된 압박에도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요. 이미 정책적 이슈인 의료개혁에 있어 용산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한 대표가 정권을 직접 겨냥하는 채상병 특검법을 추진하기도, 그렇다고 야당이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도 난감한 상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화일보 주최로 진행된 문화미래리포트2024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와 인사 후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처지가 어렵다"…'원외 대표' 한계 뚜렷
'당정 관계' 설정 역시 난관에 부딪힌 모양새입니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이기도 한 한 대표는 그간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해외직구 비판과 국민 눈높이 언급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기에는 당내 장악력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현역 의원이 아닌 한 대표는 현재 원내 기반도 약하고 당도 확실히 잡고 있지 못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또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긴 하지만 임기가 아직 2년 이상 남아있는 만큼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을 기대하고 한 대표가 전면에 설 수 없는 겁니다.
실제로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한 대표는 지난 1일 여야 대표회담에서 "내 처지가 좀 그렇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대표 측에서는 이를 부인하기는 했지만 채상병 특검법 추진은 물론 당내 설득 과정에서 한 대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단적으로 드러난 셈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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