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폭력만 위험? 시대착오 심의 그만" 21만 게이머 헌법소원
"사회질서 문란 우려" 등
모호한 조항에 자의적 해석
해외선 청소년 이용가 게임
국내선 전체 이용 불가 판정
"행복추구권·문화향유권·명확성원칙 위배"
2024-10-08 15:53:14 2024-10-10 13:52:26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국가 기관이 게임 속 폭력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유통을 막게 하는 현행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8일 제기됐습니다.
 
이날 한국게임이용자협회와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 운영자 김성회 씨 등 21만750여명은 게임에 대한 심의 기준이 영화·드라마 등 다른 매체에 비해 불공정하다며 헌법소원 청구서를 접수했습니다.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 운영자 김성회 씨(사진 왼쪽)와 이철우 변호사가 8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소원 취지를 밝히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성인이 성인 게임 못해
 
헌법소원 청구 대상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입니다. 이 조항은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의 제작 또는 반입을 금지하는데요.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해당 조항을 이유로 성인용으로 만들어진 성인 게임, 해외에선 청소년이 이용하는 게임 등에 등급을 매기지 않아 왔습니다. 청구인단에 따르면, 최근 2년간 PC 게임 플랫폼 스팀 내 성인 게임과 '로블록스'의 어린이용 게임 500여 종이 해당 조항을 근거로 한 게임물관리위원회 요청으로 차단됐습니다.
 
특히 이번 헌법소원의 실마리가 된 게임은 '뉴 단간론파 V3'라는 작품인데요. 김씨는 이날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각국의 민간기구에서 15세 등급 등으로 통과됐고, 나치의 역사 때문에 폭력성 검열이 가장 심하기로 유명한 독일에서조차 16세 이용가를 받았다"며 "유독 한국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19세 이용가 성인 등급도 아닌 전체 이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게임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내용과 수위의 콘텐츠임에도 오징어게임은 국위를 선양한 양질의 K-콘텐츠로 찬사받지만, 뉴단간론파V3는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회의에서 '사이코패스 쾌락살인 도구'라고 칭해지며 등급 거부 당했다"며 "사회 풍기 바로잡기라는 미명 하에 불 싸지른 만화책 더미 앞에서 손뼉 치며 사진 찍던 40년 전의 분서갱유가 아직도 자행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김성회 씨와 이철우 변호사가 헌법소원 청구서를 들고 헌법재판소 별관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모호한 조항에 자의적 검열
 
청구인단은 국가 사전검열에 의한 게임 유통 금지가 헌법이 보장한 행복 추구권과 문화 향유권, 명확성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선 청구인단은 모호한 조항에 따른 자의적 검열은 문화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화국가원리에 어긋난다고 봤습니다. 
 
이들은 문제 조항을 근거로 한 처벌 조항 역시 범죄 구성요건과 형벌이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앞서 영화와 음반의 국가 사전검열은 1996년 위헌 결정을 받아, 검열 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유통 금지는 없다는 게 청구인단 설명입니다.
 
지난 4월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 1위를 게임이 차지했고,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에 게임이 포함됐음에도, 비전문가들의 차별적 시선에 기반한 깜깜이 검열이 자행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김성회 씨와 이철우 변호사가 헌법소원 청구서를 헌재 관계자에게 제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번 헌법소원의 법률대리인으로 나선 이철우 변호사(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는 "게임산업법 제32조 2항에 따른 광범위한 게임 콘텐츠 규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넘어서 업계 종사자들의 창작 자유와 게이머들의 문화 향유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조항의 모호한 표현은 게임을 사랑하는 국민들과 콘텐츠 산업의 역군이 될 게임 제작자와 배급업자들이 법을 예측하고 따르게 어렵게 만들며, 해석이 심의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우리 헌법상의 대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씨는 "한국 게이머들은 모든 폭력적·선정적인 게임을 무분별하게 남용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슷하게만, 한국의 다른 콘텐츠와 비슷하게만 취급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청구인들은 특별대우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차별당하지 않기만을 원할 뿐"이라며 "저희의 평균은 세상의 평균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일단 헌법재판소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 판단을 존중해, 추후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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