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국감)강유정 "e스포츠, 중국 '명령' 받을 날 온다"
중국 '국제 e스포츠 표준화 제안서' ISO 통과
2차 '행동강령' 제안서도 제출 예정
중국과 달리 한국 정부 '수수방관'
2024-10-24 12:42:45 2024-10-24 12:42:45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중국이 글로벌 e스포츠 장악을 위해 물밑작업을 하는 동안, 한국 정부는 손놓고 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강유정 민주당 의원은 24일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에서 "중국의 '국제 e스포츠 표준화 제안서' 가 ISO에 채택될 동안 우리 정부는 방관을 넘어 사실상 중국을 돕다시피 했다"며 문체부를 비판했습니다.
 
강유정 민주당 의원. (사진=강유정 의원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1월, ISO(국제표준화기구) TC83(기술위원회 83)에 'e스포츠 표준화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5월6일 TC83 소속 35개국은 투표를 거쳐 ISO에서 이 제안서를 채택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제안서에 살을 붙여 최종 표준안을 작성하는 실무그룹인 WG12(Working Group12)를 만들고, 중국이 WG12 의 컨비너(의장)를 맡는 것까지 인준했습니다.
 
중국이 e스포츠 국제표준 제정을 주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ISO 기술위원회에 표준화 제안서를 제출하고, e스포츠와 관련 없는 위원회를 선택해 새로운 실무그룹을 만들고 의장 자리까지 확보한 겁니다. 이를 통해 중국은 표준안 작성 과정에서 고지를 점하게 됐습니다.
 
중국의 움직임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인 4월엔 중국 e스포츠 기업 A사의 자회사 B의 한국지사장 C는 자천해 한국 국가기술표준원에 전문가로 등록했습니다.
 
게다가 C는 '2024 상하이 국제 e스포츠 표준화 포럼'에서 표준화 관련 발제를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강유정 의원실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국가기술표준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대응 협의체를 만들었는데요. 여기서 C의 발언이 구설에 올랐다고 합니다.
 
강 의원실이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확인한 C의 발언은 "중국이 이걸(표준안) 제안한 것은 다음 국제 대회에서 경기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파악을 하고 있다", (표준안 중 삭제가 필요한 대목을 지적한 주장에 대해) "반대가 아닌 조율을 해보자. 중국이 어떤 의미를 둔 것인지 보자"는 내용입니다.
 
ISO 표준화 과정에서 '전문가' 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각국 전문가는 워킹그룹에서 만드는 표준화 초안 작성에 지배적인 영향을 줍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보와 자료에도 접근할 수 있어, 이런 역할을 C에게 맡겨도 되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강유정 민주당 의원. (사진=강유정 의원실)
 
이와 관련해 강 의원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잘못 네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첫째, 중국의 e스포츠 국제 표준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1년 4월 한 차례 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도전은 실패했지만 올해 5월 재수 끝에 성공한 겁니다. 그런데 문체부는 지난 6월 강유정 의원실에서 지적하자 이를 인지했습니다.
 
둘째, 문체부는 이 문제를 대응하기 위한 연구 용역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기술표준원 측에서 "중국의 도발적인 행동을 막아야 하니, 우리나라에서 별도의 제안서를 올려야 한다"며 "문체부와 논의해 연구 용역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정작 문체부는 예산을 핑계로 연구가 어렵다는 입장이라는 게 강 의원 측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관련 협·단체와 공동으로 진행 시 예산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체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며 "문체부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올해 이후 중국에서 2차 행동강령 제안서 제출 시 연구 용역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현재 진행 중인 1차 제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셋째, 문체부는 전문가 추가 등록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등록 인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많이 등록할수록 좋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표준원도 "전문가들이 많이 등록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추천을 해달라"고 문체부에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강 의원실은 이후에도 전문가 등록이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넷째, 반성은커녕 타 기관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문체부는 이 주제가 '표준화'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기술표준원 소관이고, 따라서 본인들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인데요. 하지만 강 의원실은 2020년 10월 문체부 국감에서 'e스포츠 국제 표준을 하루 속히 정립하고 중국에 대응하라'라는 질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강 의원은 이날 문체부 종합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에게 "표준화가 중요한 이유는 경기 규칙, e스포츠 대회 운영, 경기장 설계, 선수 관리 모든 것들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시안게임이나 EWC 같은 국제 대회에서 중국의 룰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 입맛대로 흘러가는데도 문체부는 수수방관중"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또 "e스포츠에 있어 문체부는 대한민국의 문체부인지 중국의 문체부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강 의원은 "향후 아시안게임이나 e스포츠 월드컵(EWC) 같은 국제대회가 열리면 중국이 이 표준안으로 주도할 텐데, 우리도 빨리 ISO 국제표준안을 만들어 병합 심사라도 해야 눈 뜨고 코 베이는 꼴을 막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유 장관은 "좋은 지적을 해 주셨다"며 "아직 구체적인 보고는 받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또 "대응 계획을 확실히 정리해 보고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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