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미국 연방정부가 '셧다운'(일시 업무중지)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개입으로 통과 불발 위기에 처했던 미국 2025 회계연도 임시 예산안이 막판 처리됐기 때문인데요. 부채한도를 유예하라는 트럼프의 핵심 요구 사항은, 공화당 내부 반대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의회(공화당 의원들) 장악력에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라는 평가를 쏟아냈습니다. 이번 예산안 진통 과정이 향후 트럼프 임기 내 주요 정책을 둘러싼 의회와의 갈등을 예고했다는 평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2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터닝포인트의 연례 아메리카페스트 2024에서 연설하고 있습니다. (사진= AFP 연합뉴스)
트럼프 '협박'에…'셧다운' 시한 넘겨 처리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의회는 부채한도 상향 요구 등을 제외한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예산안에 서명해 법제화했다고 밝혔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합의는 어느 쪽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도 "이번 법안은 공화당이 추구했던 억만장자에 대한 감세를 가속화하는 방안을 거부하고 정부가 최대한의 역량으로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어 미국 국민들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20일이 처리 시한이었던 이번 임시 예산안은 당초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안을 마련해 비교적 수월하게 해결될 전망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과 새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반대로 큰 혼란이 발생했는데요. 내달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마음껏 예산을 쓸 수 있도록 '부채 한도를 상향하거나 관련 조항을 없애라'고 요구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임시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부채한도 폐지를 요구하는 글을 무더기로 올리며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했습니다. 그는 "터무니없는 부채 상한선을 없애거나 2029년까지 유예해야 한다"며 "이 조항이 없다면 우리(공화당)는 절대로 협상을 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최측근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까지 강력하게 지지하며 "공화당 의원들이 여야 합의안에 찬성할 경우 사실상 의회에서 퇴출시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결국 공화당은 민주당과의 합의안을 파기하고 '부채한도 2년 유예' 등을 포함한 새 예산안 마련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하원 표결 과정에서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38명의 '이탈표'가 나오면서 트럼프의 요구가 포함된 수정예산안은 부결됐습니다.
"트럼프와 공화 당원 간 '불화' 증명"
현지 언론은 트럼프 당선인의 당 장악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CNN>은 "공화당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당내 보수층이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이 노출됐다"며 "트럼프는 앞으로 임기 내내 부채한도 인상 문제와 관련해 의회와 맞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통적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선호를 반대하기를 꺼려 했던 공화 당원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면서 "트럼프 당선인과 일부 공화 당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화를 여실히 보여준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반드시 통과돼야 할 법안을 마지막에 무산시키거나 지연시킨 적이 있다"면서 "이번에도 트럼프는 부채 한도 문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부채 한도 폐지를 원하는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 내 재정 보수주의 의원들의 의견 충돌이 예상되는 등 여파가 내달 트럼프 당선인 취임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1월19일(현지시간) 텍사스 보카치카의 스타베이스에서 시험 비행을 위해 이륙하는 스페이스X의 대형 로켓 스타십을 보기 위해 도착하면서 엘론 머스크의 말을 듣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머스크 대통령' 비난에…트럼프는 '옹호'
무엇보다 선출직 정치인이 아닌 일론 머스크 CEO가 의회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예산안까지 무산시킬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커진 상황을 두고 미국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기업인인 머스크가 사실상 대통령으로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은 머스크 CEO를 옹호했습니다. 22일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청년 우파단체 터닝포인트USA가 주최한 ‘아메리칸 페스트 2024’ 행사에 참석해 머스크 CEO를 칭찬하는 동시에 "그가 대통령직을 가져가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난 똑똑한 사람을 두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집권 2기 경제자문위원회(CEA) 수장에 스티븐 미런을 지명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스티븐 미런을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하게 돼 기쁘다"며 "그는 나머지 경제팀과 협력해 모든 미국인들을 끌어 올려줄 경제 대호황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런은 재무부 재직 당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020년 대선 직전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권고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습니다. 집권 2기 트럼프에게 경제 관련 전문적 조언을 하고 정부의 경제 정책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은 미런은 트럼프의 '보편 관세' 공약을 실현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제자문위원장은 연방 의회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합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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