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미어샤이머·서배스천 로사토의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서해문집 펴냄/권지현 옮김/옥창준 해제)는 비이성적인 듯한 국가의 결정도 실은 합리적으로 내려진 것임을 규명한다(여기서의 '합리'는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예컨대 일제는 1937년 이후 비합리적 행위자가 된 것이 아니라, 1941년까지도 중국, 소련과의 충돌을 회피하려 했고, 미국에 경제 봉쇄까지 당하다가 진주만 공격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그 지경이 된 책임은 일본이 져야 한다. 다만 자폭성 공격을 낳았던 것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극도의 위기의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윤석열은 어떻게 내란을 생각했는가. 미신 신봉설 따위에 빠질 필요는 없다(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이 군산에 있는 무당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그가 역술인이 맞는지도 의심하게 만든다. 골목상인이 도매시장이나 백종원 씨를 찾는 것도 아니고). 12월 3일 계엄을 선포한 것은 그날이 '길일'이서가 아니라 정보 수집과 정세 분석의 결과일 것이다. 점을 친다는 것도 묻고 답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공작을 수행하고 은폐하려 역술인들 사이에 침투하고 역술을 가장했을 가능성도 짚어야 한다.
왜 12월 3일이었을까. 11월 말 국민의힘 지도부가 김건희 특검을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원석, 송경호 등 특수통 검사들이 윤석열에게 등을 돌렸고, 한동훈도 '도이치모터스는 기소감'이라는 판단했을 법하다. 명태균 관련 보도도 윤석열 턱밑까지 차올랐다. 12월 2일과 3일 나온 기사들의 요지는 이렇다. '당원명부를 유출받아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파악했다'. '경선 기간에 경쟁 후보 지지층에게 전화하는 공작이 진행됐을 수도 있다'.
도이치모터스와 명태균은 빙산의 일각이다. 채해병 순직 사건 관련 임성근 비호, 검찰총장 시절 고발 사주 등은 늦어도 퇴임 후 수사 대상이 될 사안들이다. 부산저축은행 수사 관련 허위사실공표(대장동 일당쪽은 애초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주장)는 공소시효 만료 이전(퇴임 이후 4개월 내)에 기소될 경우 당선무효와 선거 보조금 반환으로 이어질 일이다.
윤석열이 1994년 검사로 임용된 이래 전직 대통령 넷이 수감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윤석열이 직접 수사했다. 다른 대통령들도 재임 중 가족이나 최측근이 수사를 받는 사태를 경험했다. 더구나 윤석열은 다양한 혐의에 직접 엮여 있다. 공포에 질리고도 남는다. 지지 기반이 두텁지 못하니 사면을 기대하기도 매우 어렵다. 이대로라면 퇴임 후 국민의힘 지지층에게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것이 명백했다.
결국 윤석열이 찾은 출구는 '헌정 질서의 파국'이었다. 혼자 결행할 수는 없으니 피해 의식과 음모론에 찌든 김용현과 노상원을 기용했다. 간단하고도 강력한 전략도 깔렸다. '막히면 발뺌하고 안 막히면 끝까지 민다'. 끝까지 밀지 못했을뿐더러, 발뺌하고 있지만 소용없다. 내란에 9수를 할 수도 없다. 한국사 최초로 처벌을 피하려다 처벌을 앞당긴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윤석열이 거둔 실익은 아무것도 없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중대 범죄들을 사소하게 만드는 데 가장 주효한 것은 그것들을 능가하는 초역대급 범죄다. 지지율 10%에 주저앉았던 윤석열은 30%대의 탄핵 반대율을 붙잡았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그가 받을 유죄 선고 모두를 '정치 탄압'이라 우길 테고 그 속에서 윤석열은 영웅 행세를 할 것이다. 윤석열의 범죄는 사회 일부에 거짓 세계를 씌웠다. 단 하루의 감형도 없어야 한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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