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난생 처음 만난 뿔호반새
2025-03-07 10:11:36 2025-03-07 10:11:36
뿔호반새 수컷이 지리산 엄천강가 왕버들나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선생님, 뿔호반새(Greater Pied Kingfisher)를 보셨나요?”
 
지난해 11월 말, 지리산에서 수달을 지키는 최상두 사진작가로부터 긴급한 소식을 받았어요. 귀를 의심하며 착각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가 보낸 먼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가슴이 뛰었어요.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지리산까지 거리가 멀고, 그 새를 다시 만날 기약도 없었어요. 대신, 최상두 작가에게 지속적인 관찰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다른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이 지방 인터넷 신문에 실렸고, 최상두 작가가 담은 동영상이 방송을 타면서 전국의 탐조가과 사진작가 백여명이 경남 산청군 지리산 하천으로 몰려들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뿔호반새는 1949년 마지막 채집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58년 5월 조류학자 이정우 선생이 부산 영도에서 사철나무 위에 앉은 일곱 마리 가족을 본 것이 유일해요. 이웃 중국은 과거 기록만 있을 뿐 채집이나 목격 사례가 전무하고, 일본은 북해도에 가끔 목격될 정도로 멸종위기에 놓인 새 랍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뿔호반새가 스트레스를 받아 처음 목격된 장소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던 중, 한 달 후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아 지리산 자락으로 향했어요. 사람들이 한층 줄었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질서도 잡혀 있다는 최상두 작가의 연락을 받고, 제가 가진 가장 긴 1600mm 망원렌즈를 챙겼어요. 비상식량을 챙기고 동이 트기 전부터 지리산 하천가의 뿔호반새를 기다렸어요. 주변에는 저처럼 뿔호반새를 보러 온 사람의 차량이 여섯 대 정도 있었어요. 강 건너 먼 거리에서만 촬영과 관찰이 허용되었죠. 75년 만에 공식적으로 나타난 희귀한 새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 랍니다.
 
그러나 전날 나타났다는 뿔호반새는 온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매서운 강바람과 무료함,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는 허탈감이 교차하는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 새 울음소리가 귓전을 스쳤어요. 짧은 겨울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고 강가에는 빛이 거의 남지 않았고, 아쉬운 햇살의 끝 자락이 수면 위로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는 순간, 강 건너 바위 위에서 작은 물체가 움직였어요. 오후 4시 30분경, 마침내 뿔호반새 수컷이 먹이 사냥에 나선 겁니다.
 
공중에서 정지비행을 하다가 사냥감을 포착한 뿔호반새가 물속으로 하강하고 있다.
 
평생 처음 만나는 뿔호반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카메라를 들었어요. 뿔호반새는 물가의 우뚝 솟은 바위와 강가의 왕버들나무를 빠르게 오가며 물고기를 사냥했어요. 그 황홀한 비행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순간, 지리산의 강추위와 오랜 기다림의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졌어요.
 
어둠 속에서 정지비행을 하며 사냥감을 노리는 뿔호반새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몸길이 약 38cm 정도의 뿔호반새는 물총새과에서 가장 대형이에요. 머리 깃이 유난히 커서 ‘뿔호반새’라는 이름이 붙었죠. 머리에서 꼬리까지 몸 윗면은 검은색 바탕에 흰점이 섞여 있고, 머리, 뺨, 배는 흰색이에요. 수컷은 가슴에 옅은 황갈색 띠가 있는데, 이번에 지리산 하천에서 발견된 개체는 수컷이었어요.
 
뿔호반새는 주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때때로 양서류, 파충류, 곤충을 사냥 하기도 해요. 직선 비행을 빠르게 하며, 다른 물총새과 새들처럼 정지비행도 곧잘 해요. 길고 강한 부리를 이용해 물속으로 다이빙해 사냥하는데, 잡은 물고기는 반드시 머리부터 삼켜 목 속으로 잘 넘어가도록 하지요.
 
66년 전, 마지막으로 뿔호반새를 목격한 원로 조류학자 이정우(86) 선생은 한반도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뿔호반새가 다시 나타난 것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를 표했어요. 
 
“뿔호반새는 남인도와 동남아에서 번식하는 따뜻한 기후의 새로, 한반도나 중국 북동부는 과거에도 극소수만이 겨울철에 발견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기후라면 한반도에서 볼 수 없는 새입니다. 다시 출현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한반도 기후 변화의 징후입니다.”
 
“따뜻한 나라에서 서식하는 새들이 최근 한반도에서 목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던 희귀한 새가 나타났다고 무작정 반길 일이 아니라, 그 원인을 고민해야 할 때예요.” 원로 학자의 말씀을 곱씹으며, 철새의 이동이 말해주는 기후 변화의 조짐을 무겁게 받아들여 봅니다.
 
글·사진 = 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게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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