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겨울을 마감하는 흑두루미의 대이동
2025-03-21 09:30:49 2025-03-21 14:50:25
멸종 위기의 흑두루미들이 석양녘에 충남 서산 천수만의 잠자리로 들어오고 있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3월 하순, 충남 서산시 천수만 간척지는 흑두루미(Hooded Crane) 노랫소리로 대성황을 이룬답니다. 최대 약 6000마리에 육박하는 흑두루미들이 일본 이즈미와 전남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북상 하면서 이곳 천수만을 반드시 거쳐 가기 때문입니다.
 
왜 천수만을 경유할까요? 흑두루미는 고향인 러시아, 중국, 몽골의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체력을 키우고 에너지를 축적해야 합니다. 특히 일본 이즈미서 월동한 흑두루미들은 바다를 건너느라 지쳐 있고, 또다시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지요. 이때 천수만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천수만은 이들이 먹고 갈 식량이 준비돼 있어요. 서산 김신환 동물병원 원장의 주도로 서산시와 후원자들이 매년 흑두루미의 식량을 공급해줍니다.
 
몸길이가 약 100cm 정도의 흑두루미는 두루미나 재두루미에 비해 덩치가 작지만 이동 거리는 훨씬 길어요. 그들의 번식지는 러시아 동북부 끝자락에서 중국, 몽골, 러시아 바이칼호 북부까지 유라시아대륙 동북부의 동서로 길게 분포 한답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광활한 습지에서 띄엄띄엄 둥지를 틀고 번식하지만 흑두루미는 산림속 습지에서 집단 번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번식 생태가 베일 속에 있다가 최근 몇십년 전에 밝혀진 일이지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모두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이고 우리나라도 보호야생동물과 국가유산으로 등재해 보호하고 있어요. 흑두루미는 우리나라에 사계절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매년 10월 초 날아와 서산 천수만과 순천 순천만, 그리고 서남해안 습지에서 월동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체는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 이즈미에서 한겨울을 지내지요.
 
1990년대 이전에는 경기 고양·파주시 하천과 농경지에 그리고 경북 낙동강 상류에 수천마리의 흑두루미가 찾아왔어요. 그러나 이들이 찾아오던 지역이 개발되면서 휴식처와 먹이터가 사라지자 바다 넘어 일본의 이즈미로 대부분 이주했어요. 이즈미는 전략적으로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제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세계적인 명소로 부상했죠. 그러던 1996년, 전남 순천만에서 한 지역 활동가 월동하고 있는 흑두루미 무리를 처음 발견했고 그의 제보를 받은 필자가 59마리의 흑두루미를 촬영해 문화일보에 첫 보도했어요. 이후 다른 매체의 후속 보도가 이어지며 순천만의 흑두루미 보호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충남 천수만에서 월동 중인 흑두루미들이 석양 무렵 잠자리로 날아오고 있다.
 
순천시는 순천만의 개발을 중단하고 흑두루미에게 일본의 이즈미처럼 먹이를 제공하고 그들이 월동하는 농경지의 전신주를 뽑고, 흑두루미를 순천만 습지의 상징으로 발전시켰어요. 오늘날 순천만생태공원에 연간 7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서산도 흑두루미의 먹이 공급을 비슷한 시기부터 하고 있어요. 그러나 서산의 한겨울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때문에 흑두루미들은 먹이가 있어도 남녘으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천수만의 먹이 주기는 2-3월 이동 시기에 집중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흑두루미 먹이 공급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예요. 야생동물인 흑두루미가 자연에서 스스로 적응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특히 흑두루미처럼 무리를 이루어 집단 월동하는 새들이 한 지역에 집중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에요. 무리에 전염병이 돌면 집단 몰사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올해 3월3일 미국 인디아나 주에서 캐나다로 이동중인 캐나다 두루미가 1500마리 이상이 조류인플루엔자(AI)로 희생됐어요. 2023년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급격히 늘은 이유는 일본 이즈미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 수백마리 이상의 흑두루미가 몰살하자 위험을 느낀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겨울 철새 중 흑두루미가 떼 지어 북상하면 봄이 왔다는 신호탄입니다. 10월 초 한반도를 찾아와 이듬해 3월 중하순 고향으로 돌아가는 흑두루미가 월동지인 한반도 들녘과 습지에 고루 분포해 안전하게 추위를 피하고 배불리 먹어, 인간과 더불어 이 지구상에 오래도록 공존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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