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환율 실패시 장관·중앙은행 총재 줄사퇴…우리는?
2026-01-06 14:17:58 2026-01-07 07:57:38
 
[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외환당국의 잇따른 개입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이 진정될 기미가 없자 당국 책임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장급 명의 구두개입에 이어 역대급 달러 매도에 나섰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1440원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경제 장관이나 중앙은행 총재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빈번한데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당국 등은 "구조적 문제"라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환율 정책 실패, 구조적 한계 탓만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장중 1480원대를 돌파한 이후 외환당국이 구두개입과 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환율은 오르내리며 불안정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불과 보름여 전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국장급 명의 '외환당국 시장 관련 메시지'를 내고, 개인투자자와 기업이 달러를 국내로 들여올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발표하는 등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의지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책이 지금의 환율 흐름을 단기간에 바꾸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1445원에 개장한 뒤 1447원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지난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압송하면서 지정학적 긴장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 더해졌습니다.
 
달러 저가 매수 수요도 여전합니다. 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4대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선 지난달 23일 이후 불과 일주일 새 34억4600만달러, 한화 약 5조원가량 늘었습니다. 환율이 일시적으로 내려간 틈을 타 달러를 미리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당국 개입에도 불구하고 방어적 달러 매수세가 여전한 모습입니다. 시장에서는 연초 들어 당국 개입 효과가 약해질 경우 다시 1500원선까지 오버슈팅(일시적 급등)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환율 시장 불안정성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외환당국은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 고위 당국자들은 외환 정책 실기를 반성하기 보다는 환율 시장 불안이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입장입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1400원대 후반의 환율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는 괴리가 큰 수준"이라며 산업 경쟁력 강화와 자본시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현재의 환율 불안은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상회하는 자본 유출이라는 구조적 한계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했습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생산적 금융, 포용금융 등 정책 기조를 강조할 뿐 환율 문제는 키워드 수준에서만 언급하는 데 그쳤습니다.
 
여당에서도 환율 위기 상황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과거 여러 차례 "경제는 결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윤석열정부 시절 환율 폭등을 강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현재 고환율 국면에 대해서는 당정 차원에서 별다른 메시지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고환율에도 경제 대응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근거인 외환보유액도 안심할 수준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12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80억5000만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월 대비 약 26억달러 줄어든 규모입니다. 감소 폭으로 보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12월 이후 28년 만에 최대치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아시아 일부 국가 외환당국 수장들 '환율정책 실패' 사퇴 
 
우리나라 외환당국의 안일한 시각과 책임 회피성 태도가 도마에 오르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외환 위기가 심화될 경우 수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탄핵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이란에서는 리알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폭락하자 모하마드 레자 파르진 중앙은행 총재가 환율 방어 실패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같은 해 3월에는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경제재무부 장관이 환율 실패를 이유로 의회에서 탄핵을 당했습니다.
 
앞서 터키에서는 2024년 환율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한 하피즈 가예 에르칸 중앙은행 총재가 정치권과 충돌하며 해임되는 등 통화정책과 환율 관리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2022년에는 이집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외환 위기가 심화하자 타레크 아메르 중앙은행 총재가 임기를 남기고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시장 불안이 장기화돼도 정책 수장의 거취나 책임론은 공론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돼도 "구조적 문제"라는 설명만 반복될 뿐,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심지어 1997년 IMF 위기 때도 외환당국 수장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보다 철저한 환율 관리를 위해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외환시장 안정의 총괄 책임은 재경에 있지만 실제 시장 개입과 집행은 한국은행이 담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원화된 체계 속에서 환율이 급등해도 정책 실패의 책임을 명확히 지는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의 환율정책 체계에서 재정경제부가 외환시장 안정과 정책 총괄 책임을 법적으로 가지며 한국은행이 실행을 담당하는 이원 구조가 책임 분산을 초래한다"고 문제를 짚었습니다. 그는 "현재 환율정책 체계의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려면 외국환거래법을 개정해 환율 안보 기준을 설정하고, 독립적 외환정책위원회를 신설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환율 안정 실패가 물가·금리·실물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므로 명확한 단일 책임 주체 지정이 요구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외환당국 구두개입에도 환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지만 책임 주체인 한국은행과 재정경재부 모두 "구조적 문제"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구윤철 부총리,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