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전례 없는 ‘골든타임’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2022년 폴란드와의 K2 전차, 천무 로켓 등 대규모 계약을 기점으로 중동, 동남아시아, 호주에 이르기까지 K방산의 깃발이 꽂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지금의 ‘대박’이 실력에 기반한 지속 가능한 성과인지, 러·우 전쟁이라는 비극이 만들어낸 일시적 ‘특수’인지 냉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K방산이 ‘반짝 흥행’을 넘어 글로벌 G4로 안착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와 실질적인 해법을 3회에 걸쳐 모색합니다._편집자 |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한국 방위산업이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연이어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재래식 무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한국산 무기는 ‘가성비 좋은 대안’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잭팟’의 환호 뒤에는 ‘특정 품목 쏠림’과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수출 총액의 급증이 곧 산업 경쟁력의 질적 도약을 의미하지는 않아서입니다.
K9 자주포(오른쪽)와 K10 탄약운반차.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차보다 큰 노다지, ‘함정 MRO’
K방산 수출의 선봉장은 단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현대로템의 K2 전차입니다. 산업연구원(KIET)의 ‘세계 방산 시장 점유율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전체 방산 수출액에서 이들 지상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0%를 상회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안보 위기 속에서 당장 실전에 투입 가능한 가성비 좋은 무기체계를 한국만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수요가 ‘포스트 워(Post-war)’ 시대에도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전쟁이 종식되고 유럽의 생산 라인이 정상화되면, 재고가 쌓인 지상무기 시장은 급격히 냉각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이엔드 시장을 장악한 미국과 전통의 강호 독일, 프랑스가 전열을 정비하고 나선다면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KRIT)가 발간한 ‘2025 방위산업 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재 국내 방산 인프라 및 수출 에너지의 80% 이상이 지상무기체계에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불균형한 포트폴리오는 시장 환경 변화라는 작은 파도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습니다.
해상 전력은 한 척당 수조원에 달하는 ‘움직이는 영토’입니다.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호주, 필리핀 등에서 거둔 성과는 고무적이지만 잠수함·호위함 수출은 지상 장비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함정은 한 번 인도하면 30~40년간 유지·보수·정비(MRO)가 수반되는 ‘연금형 수익 모델’입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방산 시스템은 제품을 파는 데만 급급할 뿐, 장기적인 현지 건조 인프라 대응 등은 부족합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우리 군 자체가 ‘지상군’ 중심이다 보니 방산 포트폴리오 역시 그에 맞춰져 있었던 측면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세계 주요국들이 해양 세력화를 꾀하는 상황에서 해상 전력은 영토 밖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핵심 자산”이라며 “함정은 전차 등 지상 장비와 비교해 단가 자체가 매우 고가일 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했습니다. 한 번 판매하면 수십 년간 MRO가 이어지는 만큼 지속적인 수익을 안겨줄 ‘노다지’라는 설명입니다.
지난해 3월 유지·보수·정비(MRO)를 마친 미 해군 7함대 소속 윌리 쉬라호가 경남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을 출항하고 있다. (사진=한화)
‘철기’ 넘어 ‘소프트웨어’ 방산으로
항공 분야는 방산 기술의 집약체이자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시장입니다.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를 필두로 로우급(Low)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나, 아직은 ‘경차’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F-35가 장악한 5세대 스텔스기 시장과 라팔·유로파이터가 버티는 4.5세대 중등 시장 사이에서, 올해 양산이 시작되는 KF-21(보라매)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입니다. KF-21이 진정한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해서는 항전 소프트웨어와 독자 무장 체계의 ‘완전한 패키지’화가 필수적입니다. 특히 엔진 기술의 자립 없이는 수출 때마다 미국·영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결국 ‘수출 주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미래 전장의 패러다임 변화 역시 위협적입니다. 오늘날 전장은 수천억 원의 K2 전차가 단돈 수백만 원짜리 자폭 드론 한 방에 무력화되는 ‘디지털 방산’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한국은 IT 강국을 자처하지만, 드론과 AI 기반 지휘통제(C4I) 등 소프트웨어 전력화에서는 이스라엘이나 터키의 바이락타르에 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쇳덩이를 깎는 ‘철기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통해 전장을 통제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무기체계(SDV)와 무인 수상정(USV) 등 비대칭 전력으로의 체질 개선이 요구됩니다.
LIG넥스원이 체계 종합을 맡아 수출 효자로 등극한 천궁-II(M-SAM) 등 유도무기 분야도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유도무기는 실전 소모량이 많아 ‘글로벌 미사일 허브’로 도약할 잠재력이 크지만, 정작 미사일의 눈과 뇌에 해당하는 핵심 센서와 위성 항법 기술의 대외 의존도가 아킬레스건으로 꼽힙니다.
정영철 국방기술진흥연구소(KRIT) 연구위원은 “AI나 로봇 등 민간 기술의 발전 속도가 압도적인 분야는 기존 대형 무기체계와 차별화된 ‘획득 프로세스’가 도입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존처럼 계획부터 개발까지 10년 이상 소요되는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전장에 대응할 수 없는 만큼, 군의 요구 사항과 상용 기술을 즉각 접목해 1~2년 내에 전력화할 수 있는 유연한 체계가 절실하다는 지적입니다. 대기업에 편중된 연구개발 구조와 관련해 정 위원은 “현재는 대기업이 핵심 기술 과제를 독점한 뒤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구조라 중소업체들이 독자적인 기술력을 축적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중소기업 전용 핵심 기술 과제’를 전략적으로 늘려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미국 제너럴 아토믹스가 개발 중인 고정익 무인기 모하비(Mojave)가 해군 독도함 갑판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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