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한동인 기자]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 전 세계를 흔들었다면, 올해는 트럼프발 환율 전쟁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덮을 전망입니다. 연초부터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의 공동 개입설이 확산되며 시장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외환시장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공동 환율 방어에 나서는 '협조 개입'을 넘어, 아시아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한 포괄적인 '제2 플라자 합의(마러라고 합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달러 평가절하를 통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통화 매수'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 경제 역시 수출은 물론, 경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마러라고 합의' 가동?…미·일 개입에 엔화 강세
26일 도쿄 외환시장에 따르면 일본 엔화는 개장과 동시에 요동쳤습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은 장중 153엔대까지 떨어지며 강세를 보였는데, 약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입니다. 지난 23일 장중 159엔대까지 급등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하락세이기도 합니다. 앞서 엔화 환율은 지난 23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동결 후 기자회견에서 신중한 금리 인상론을 피력하자 장중 159엔까지 치솟으며 심리적 지지선인 160엔을 위협한 바 있습니다.
엔·달러 환율이 급락한 것은 일본은행과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의 이른바 '레이트 체크(rate checks)', '환율 점검'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입니다. 시장에서는 일본과 미국 당국이 외환시장에 본격 개입하기 전 단계에서 이뤄지는 레이트 체크를 실시했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레이트 체크는 외환당국이 주요 금융기관에 거래 상황과 환율 수준을 문의하는 사전 점검 절차입니다. 통상 외환시장 개입을 앞두고 실시되며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하려는 시장 견제 신호로 해석됩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날 "지난 주말 미국 금융당국이 환율 개입 전 단계인 레이트 체크를 실시했다"며 "미·일 당국에서 과도한 엔저를 억제하기 위해 공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으로 엔매입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로이터 통신>도 25일(현지시간) 미국이 엔화뿐 아니라 한국의 원화, 대만의 달러화 등 아시아 주요 통화를 지지하기로 약속했고, 이를 실제 이행하는 '마러라고 합의'가 가동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특히 <로이터 통신>은 최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이례적으로 '원화 가치 하락이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한 것을 상기하며 "이는 원화와 엔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낮추려는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에 대한 추측을 불러일으켰다"고도 해석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엔화 따라 원화도 강세…수출 등 한국경제 타격 불가피
마러라고 합의는 미국의 만성적 무역·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인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Mar-a-Lago)'에서 따왔습니다. 지난 1985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체결했던 '플라자 합의'처럼 미국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주요국이 공조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결국 제조업 부활과 수출 경쟁력 확대를 원하는 미국과 달러 강세로 수입 물가에 부담을 느낀 아시아 국가 등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인데, 사실상 달러 패권을 흔들어 실익을 챙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행보로 해석됩니다. <블룸버그 통신>도 "미국이 엔화 강세를 유발하는 조치를 통해 주요 교역국 대비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잠재적 공동 환율 개입 논쟁이 재점화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문제는 마러라고 합의로 주요국 통화 절상을 요구할 경우 한국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입니다. 우선 미국이 수출에 강점을 보인다면 반대로 한국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수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환율 하락으로 수입 기업이 수입 물가 하락과 생산비 절감의 효과를 거둘 순 있지만, 중장기적으론 수출 경쟁력 약화와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수출액은 0.25%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또 상호 관세에 따라 관세는 관세대로 내고,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손까지 떠안아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합니다. 여기에 관세와 환율을 고리로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거세질 수도 있습니다. 이날 원·달러 환율도 장 초반 엔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20원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실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9.7원 떨어진 1446.1원으로 출발해 등락을 거듭하다 25.2원이나 급락한 1440.6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번 미·일 공조를 ‘제2의 플라자 합의'로 확대 해석하는 데 선을 그으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입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마러라고 합의는 아직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향성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할 순 있다"며 "원화 강세로 가면 수출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도 "미국이 국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좀 더 조치가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우리 입장에서는 수출은 물론, 그간 보면 수입도 불리한 영향이 많았다"고 꼬집었습니다.
26일 일본 도쿄에 있는 한 외환거래 회사 딜링룸에서 모니터에 현재 엔·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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