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금융감독원이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명분으로 기업 복지 영역인 사내대출까지 규제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주택담보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민간기업 임직원들이 활용하는 저금리 사내 주택자금 대출을 규제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는데요. 직장인들 사이에선 이 원장의 발언으로 기업들이 사내대출 제도를 축소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금감원 "일정 부분 규제 필요"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내대출 규제 필요성에 대해 "공익을 위해 일정 부분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정례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내대출은 기업이 임직원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자체 자금이나 사내근로복지기금 등을 활용해 운영하는 복지 제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가 적용되고 금융기관 대출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금융당국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나 가계대출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노사 협의를 통해 무주택자 또는 기존 주택을 처분하는 1주택자를 대상으로 주택 구입 목적 사내대출 한도를 최대 5억원까지 확대했습니다. 금리는 연 1.5% 수준으로 현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금리 차이가 납니다. SK하이닉스 역시 임금협상을 앞두고 주택 구입 목적 사내대출 한도를 기존보다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국은 이 같은 사내대출이 은행권 대출 규제를 피해가는 부동산 투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은행권 주담대와 신용대출 관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일부 고소득 대기업 직원들이 저금리 회사 대출을 통해 주택 구매 자금을 마련할 경우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기업 경영 자율성 침해"
시장에서는 사내대출을 금융 규제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기업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사내대출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기업이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해 마련한 복지 제도이기 떄문입니다. 특히 대기업들은 임직원 복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주거 지원, 의료 지원, 교육 지원 등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사내대출만 별도로 금융 규제 대상으로 보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사내대출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 혜택 중 하나이지 금융기관처럼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대출 상품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운영해 온 제도를 정부가 일률적으로 관리하면 기업 복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사내대출을 활용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나옵니다. 대기업 재직자 A씨는 "최근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봤지만 한도와 금리 부담 때문에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았다"며 "사내대출은 회사가 직원들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이를 또 다른 규제로 막는다면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직장인은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보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실제로는 높은 집값과 대출 규제 속에서 회사 지원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가계부채 문제의 원인을 기업 복지 제도로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은행권 대출 규제로 인해 청년층과 무주택자의 주거 사다리가 좁아진 상황에서 기업이 제공하는 저금리 지원마저 제한할 경우 실수요자의 자금 마련 기회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전문가들 "당국 개입 권한 있나"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가계대출 관리 필요성이나 사내대출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과 금융당국이 직접 기업에 사내대출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금융당국이 일반 기업의 복지나 자금 운용 방식에까지 개입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답답함에서 나온 발언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제도화하거나 집행하려 한다면 권한과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사내대출을 들여다볼 필요성은 있을 수 있지만,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한다면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면서 "사내대출은 기업과 임직원 간 사적 계약 영역이라는 점에서 정부 개입의 근거와 범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황 교수는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은행권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발생하는 대출도 예외 없이 관리하겠다는 논리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금융권 안팎에선 사내대출을 일괄적으로 제한하기보다 주택 구매 목적, 지원 규모, 대상 기준 등을 기업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방향은 필요하지만, 모든 자금 이동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접근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금융권 대출과 기업 복지 제도를 구분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내 대출 상담 창구 모습. (사진=뉴시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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