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양균 기자]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스탠리 큐브릭·1968년)’에는 ‘HAL-9000’이라는 인공지능(AI)이 등장합니다. 목적을 위해 인간을 죽음에 내모는 AI. 이 새로운 악당의 등장은 상상의 결과물이었지만, 이제 AI는 업무와 학업 등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수단이 됐습니다.
의료계에서 AI에 대한 인식 변화도 흥미롭습니다. 지난 2016년 IBM의 의료 AI ‘왓슨 포 온콜로지’가 가천대 길병원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 IT 업계에서는 진단의 혁신을 말했지만, 의료계는 부정적인 견해가 팽배했습니다. 혹시 모를 치명적 오류가 진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 이제 의료 현장에서 AI는 단순 진단 보조의 역할을 떠나 환자의 상태를 종합 분석해 예견하는 상태까지 발전했습니다. 더 이상 의료계에서 AI의 효과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과거 영화 속 악당에서 이제 환자 목숨을 살리는 도구로 AI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정윤태 부산본병원 행정원장은 의료 AI가 환자 안전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고 말한다. (사진=김양균 기자)
생사기로 위기를 예견하다
부산본병원에서 일하는 서혜진 간호사는 환자 모니터 화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고관절 수술을 받은 80대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겁니다. 뷰노 메드 딥카스(VUNO Med-DeepCARS)가 환자의 활력징후를 종합 평가한 점수가 90점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딥카스는 심정지를 미리 예견합니다. 80점을 넘기면 위험 상태라고 설정해 둔 상태에서 딥카스의 점수는 곧 있을 ‘코드블루’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즉시 의료진의 조치가 이뤄졌고, 결국 환자는 위급 상황에서 벗어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난 16일에도 모니터에 70대 환자 상태의 이상 변화가 감지돼 사전 조치가 이뤄졌습니다.
“야간에는 당직 의사와 간호인력의 수가 적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응이 쉽지 않아요. 수술 직후 환자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계속 직접 가서 환자를 봐야 했는데 한 번에 모니터링이 되고 심정지와 같은 응급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사전 예고를 해주니까 편하죠.”
지난 18일 방문한 부산본병원은 200병상 규모의 관절전문병원입니다. 서부산권에 위치한 부산본병원을 중심으로 20km 이내에는 관절 전문병원이 전무해 지역 환자들의 의존도가 높습니다. 진료과 특성상 수술이 많아 부산·경남·울산을 통틀어 가장 많은 정형외과 수술이 시행됩니다. 지난해 기준 연간 5000건의 수술이 시행됐고, 월평균 400~450건이 이뤄졌습니다.
지역의료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의료인력의 원활한 수급이 어렵다는 점이다. 의료 AI는 부족한 인력의 업무 효율화에 도움을 준다. 사진은 부산본병원의 모습. (사진=김양균 기자)
환자 연령 분포는 △60대 약 60~70% △70대 약 20% △80대 이상 약 5% 등입니다. 기저질환을 앓아 면역기능이 떨어진 고령 환자가 많은 만큼 돌발 사고 가능성도 높습니다. 통상 수술 자체보다 수술 이후가 더 고비입니다. 하루에 많게는 40명까지 수술이 이뤄지는 탓에 만약 야간 및 공휴일에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병원은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 벌어집니다. 병원이 환자 안전을 위해 딥카스를 포함해 총 세 개의 AI 환자 모니터 시스템을 갖추기로 한 이유입니다.
“딥카스와 같은 환자 감시 시스템이 없었다면 아마도 최소 한 분은 돌아가셨을 겁니다. 사전에 환자 상태가 감지돼 선조치가 이뤄져 살려냈거든요. 덕분에 최근 3년간 별다른 의료사고가 없었습니다. 비용효과성으로 봤을 때 이득은 분명해요.” 정윤태 행정원장은 AI의 효과성에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지역 의료 인력 부족, AI가 도움
지역 의료기관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간호인력을 뽑고, 이들이 능숙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입니다. 환자 상태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숙련도가 낮은 신규 간호사에게 어려운 일입니다. 심정지 등 응급상황이 발생했다면 신규 간호사가 느낄 부담은 더 큽니다. 숙련도 여부는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 원장은 “잠재적 리스크 감소가 의료 AI의 가장 큰 이득”이라고 했습니다. “수술 후 계속 환자의 바이탈사인(활력징후)를 지켜봐야만 했는데, 지금은 전체 감시가 되고 사전 예고도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돼 신규 간호사들은 심적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말합니다.”
뷰노의 환자 심정지 예측 시스템인 딥카스의 모습. 병원이 환자의 활령징후를 종합 검토해 설정해둔 80점 이상의 점수가 눈에 띈다. (사진=김양균 기자)
‘지필공(지역·필수·공공의료)’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정부는 특히 지역 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지역 병원의 입장에서 정책 효능감을 느끼기는 역부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원장은 AI가 의사 및 간호인력 수급 어려움을 겪는 지역 의료기관에 유용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AI는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하고 역량을 확장하는 기술이라 제한된 인력으로도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환자 관리가 가능해진다”며 “경험이 부족한 의료진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환자 상태 악화가 발생한 이후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신호를 사전에 감지해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점이 AI 의료 기술의 가장 큰 가치”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양균 기자 k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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