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이 시끄럽고 정치 담론이 복잡할수록 그 사회는 혼술이 는다. 일종의 정치적 피로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회가 일본이다. 일본은 혼술의 천국이다. 그건 일본의 정치가 후진적이라는 얘기도 되는데, 변화의 기미가 없기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사회에 혼술이 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좋은 신호는 아니다. 사람들이 되도록 서로 말을 섞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사토리는 일본어로 ‘悟り’라고 쓴다. 한자 ‘깨달을 오’로 알 수 있듯이, 일종의 득도(得道)를 의미하되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어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지금 일본의 30~40대를 가리킨다. 복잡하게 얘기할 게 없다. 우리의 삼포 세대 혹은 N포 세대와 같다. 일본의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생 같은 경우 장기 불황으로 (2010년 기점) 젊은이들 상당수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돈을 모으고 집을 사는 것은 앞선 기성세대가 다 ‘챙겨 먹었고’ 자신들은 뭘 해도 안된다고 생각하며 청춘을 지나온 세대이다. 이들은 그래서,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마치 히키코모리처럼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비용 부담이 있는 자리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밥 먹고 혼자서 맥주 한잔하는 것을 즐기는 세대이다.
포스트 사토리 세대인 아스카는 퇴근 후 주로 혼자 술을 마신다.(사진=아수카 재팬 다이어리)
일본의 브이로그 중에 ‘asuka japan diary’라는 것이 있다. 아스카라는 여성의 일상을 담은 것이다. 정보란에 자신을 ‘도쿄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업직 사원으로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온다. 그녀는 종종 스스로가 번아웃 됐다고 말하며 지치고 힘든 자신을 위해 혼밥과 혼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스트레스 가득한 한 주&밤늦은 라멘 보상’편이다. ‘내가 지긋지긋한 날, 혼자 가는 이자카야 두 곳: 퇴근길 야간 루틴’ 편도 있다. 혼자 바비큐를 먹고 혼자 이자카야에 가서 맥주를 마신다. 이 브이로그에는 대사가 없다. 내레이션을 깔지 않는다. 조용하다. 세미 클래식이나 재즈의 BG가 깔리고 자막이 붙는다. 혼자만의 세계를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침입은 허용하지 않지만 들여다보는 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는다. 친언니와 밥과 술을 먹는 ‘20대 시절 언니와 함께한 밤의 루틴’ 편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의 건너편에 앉아 묵묵히 먹고 마신다.
아스카는 도심의 작은 맨션에 사는 것으로 보이고 거의 매일 퇴근길에 앉는 혼술의 테이블에서 맛있게 맥주를 마신다. 일종의 ‘포스트 사토리 세대’이다. 이전 사토리 세대에 비하면 이제 가까스로 자신의 작은 영역을 확보했고 그것 이상 바라지 않으며 그것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나 홀로 세대이다. 이들에게는 왁자한 분위기에서 서로 침 튀기며 설전을 벌이는 정치 얘기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여성 아스카의 나 홀로 밥, 나 홀로 술은 완전한 진실이 아니다. 반전이 있다. 기획과 연출, 출연은 아스카 본인이 맞지만, 촬영과 편집은 그녀의 남편이 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영상에 전혀 나오지 않고 오로지 아스카가 도시의 삶을 버티고 살아내는 모습만을 조용히 담아낸다.
우리의 삼포 세대가 경제적 양극화와 부동산 욕망에 따라 다소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면 일본은 그것을 혼술의 나마비루(생맥주)나 가쿠 하이보루(산토리 하이볼)로 순화시켰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는 현재에 와 더더욱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알아보고는 서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마음의 벽’을 쌓는다. ‘asuka japan diary’의 구독자 수가 14만에 다다르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일본의 노포들을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개된 라멘 에조(ら?めん蝦夷)의 주방장 켄짱이란 남자도 그렇다. 라멘 에조는 홋카이도식으로 (달걀 볶음밥이 기본인) 중국 음식을 만드는 중식당이다. 켄짱은 보통 새벽 5시에 나와 오후 4시까지 비교적 혹독한 노동을 치른다. 그럼에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군다. 야간 근무 후 아침에 퇴근하는 사람들이 그의 단골들이다. 그들은 친절한 켄짱에게 생맥주를 사주곤 한다. 오후 4시 퇴근할 때쯤 켄짱은 생맥주를 6잔에서 7잔쯤 마신 상태다. 심하게 ‘알딸딸해’ 하면 사장이 그를 차에 태워 보낸다.
도쿄 노포 라멘 에조의 주방장 켄짱은 손님들이 주는 생맥을 하루에 6~7잔 마신다.(이미지=챗GPT)
특이한 것은 켄짱이 문을 여는 아침 7시대에 이미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무숙자가 있다는 것이다. 70대 노인처럼 보이지만 늙어 보이는 60대일 수도 있다. 그는 아침에 하이볼 한잔을 먹고 정오쯤까지 자리에 앉아 부처처럼 한숨 잔다. 점심시간에 눈을 뜨고 1인분은 돈이 부족한 듯 반인 분의 음식을 시킨다. 켄짱은 군말 없이 반인 분을 내어 주며 생맥주까지 한 잔 준다. 그에게서 돈을 받아 봐야 얼마나 벌겠느냐는 식이다. 이 라멘 에조에 우르르 들어 오는 손님들은 거의 없다. 대개 혼자 와서 혼자 술을 마신다. 안주로 버섯볶음 같은 걸 고른다. 그들은 혼자 앉아 술을 마신 구력이 하도 오래다 보니 오늘은 누가 왔네, 오늘은 누가 새로 왔네, 를 감별한다. 일본 사회는 그렇게 홀로된 사회이며 혼자 술을 마시는 사회이다. 이들이 자민당 편인지 사회당 편인지 아니면 공명당 지지자인지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일본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제국주의 파시즘 이후 60~70년대에 학생운동인 전공투가 뭔가 바꿔 보려 했으나 관념적 사회운동에 그쳤고 그 와중에 일부가 극렬 테러리스트인 적군파가 되면서 큰 실망과 공포를 주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실패가 쌓이면서 70년 독재의 자민당 정치구조가 바뀌지 않게 됐으며 정권을 자민당 내 계파가 ‘나눠 먹는’, 도저히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정치는 일본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한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정치관을 밝히거나 정치적 신념을 앞에 내세워 술자리에서 싸우는 일이 별로 없다. 술 마시는 자리가 난장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는 술자리를 피해 왔다. 그러느니 혼자 마신다, 아스카처럼. 켄짱처럼 느슨하고 친절하게 마신다. 일본산 위스키인 산토리 위스키가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위스키는 주로 혼자서 ‘고독하게’ 마시는 것이다. 여성들을 위한 거의 무알코올에 가까운 맥주인 ‘홋피’같은 것이 개발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 사회의 술자리도 투쟁이나 논쟁의 광장이 아닌 침묵과 도피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혼술 문화는 이번 민주당의 내분, 야당의 몰락으로 더욱 가속화될 공산이 크다. 한국도 3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이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실시한 2025 음주 정기조사에 따르면 미혼 1인 가구의 응답자 중 58.1%가 정기적으로 혼술을 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이들 중 23.8%가 관계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기 위해) 혼술을 한다고 답했다. 당연히 편의점 도시락, 안줏거리로 적당한 냉동 냉장 식품 등의 매출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일본의 직장여성인 아스카도 종종 혼자서 마트 쇼핑을 즐긴다. (‘도쿄 직장인의 일주일 지출 내역’편)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맥주 마시고, 혼자서 노래방을 가며, 혼자서 편의점 쇼핑을 한다. 삼각김밥, 냉동 도시락을 사서 혼자 먹는다.
한국 음식점에도 1인용 화로가 는다. 혼술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이다.(이미지=챗GPT)
혼자 일하고, 혼자서 술을 먹는 사회는 편리한 점은 있지만 그 자체로 썩 바람직하다고 하기도 뭣하다. 어쨌든 외로운 사회이다. 정치의 문제이다. 정치적 피로도, 정치 혐오감이 혼술의 매출을 키운다. 뭐, 그럼에도, 술 먹고 니가 누구 편이니 내가 누구 편이니 싸우는 것보다야 낫다. 당분간 한국 사회는 혼술 사회가 되는 것이 낫다.
서울 마포에 ‘혼고집’이라는 고깃집이 있다. 테이블이나 바에 앉으면 1인용 화로가 앞에 놓여 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상이 가는 일본 여느 고깃집에서나 볼 수 있는 1인용 화로이다. 고기 1인분을 먹어도 된다. 당연히 술도 혼자 먹는다. 그 모든 걸 하는 데 있어 대화가 필요 없다. 1인용 태블릿 PC가 자기 자리에서 주문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요즘은 세계 어디를 가든 우버 앱과 구글맵, 신용카드만 있으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다닐 수 있다. 인류 문화가 혼술을 부르고 있다. 이건 약인가 독인가. 그것이 문제로소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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