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콘텐츠, 또래집단 '정체성 코드'로 교실 파고들었다
온라인서 시작된 혐오표현, 교실 안 '놀이 문화'로 번졌다
밈·또래 문화와 결합해 교실까지…소속감·정체성 문제로
2026-07-19 16:16:02 2026-07-19 16:16:02
[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체감상 반에서 3분의 1 정도는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난무하는 극우 성향 콘텐츠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특히 반에서 한두 명은 자신의 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주변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그런 언어와 분위기에 익숙해지더라고요."
 
경기도 이천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권모 교사는 최근 학생들이 혐오·역사왜곡 표현을 쓰는 원인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극우 성향 콘텐츠가 교실 안으로 들어와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또래집단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사실' 설명해줬더니…'긁히셨냐?' 반발
 
경남 창원의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역사 과목을 가르치는 배모 교사는 최근의 황당한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운지', '홍어' 등 혐오·역사 왜곡 표현을 쓰길래 "그런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자, 오히려 학생들로부터 "선생님, 긁히셨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예전엔 역사적 사실을 잘못 알고 있는 학생에게 제대로 설명하면 대부분 문제를 수긍했지만, 지금은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습니다.
 
권 교사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학생들에게 역사적 사실과 관련 영상 등을 안내해 줘도, 극우 콘텐츠의 영향 탓인지 '그거 다 조작된 것 아니냐'라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며 "교사가 사실을 설명하면 학생들은 지식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자체가 부정당한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교육 현장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극우 콘텐츠를 통해 접한 혐오·역사왜곡 표현이 또래 문화와 결합해 교실 안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또래집단서 '밈' 모르면 소외…'장애인 조롱'도 확산
 
현장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단순히 역사를 몰라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운지', '부엉이바위' 등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단어인 줄 알면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겁니다. 학생들은 호남 사람들을 조롱하는 의미의 '홍어', '전라도에 가려면 여권이 필요하냐'는 말 역시 그 유래를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내뱉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사들은 원인을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MEME, 이미지나 짧은 영상 형태로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형태)에서 찾습니다. 혐오·역사왜곡 표현이 밈과 결합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또래집단에선 최신의 밈을 모르면 대화나 놀이에 어울리기 어렵습니다. 혐오나 조롱의 의미가 담긴 밈이 퍼지고, 스스럼 없이 쓰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배 교사와 같은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모 교사는 온라인 게임 '오버워치'에서 유행했던 '탱장연'이라는 표현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그는 "게임 내 비선호 포지션인 돌격(탱커)군을 선택하면서 일종의 시위성 플레이를 하게 되는데, 이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합성되면서 탱장연(탱커+전장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며 "게임 내에선 '○+장연'이라는 단어에 장애인을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의미가 담길 수 있어 쓰지 말자는 의견도 있는데, 학생들 중엔 이 단어를 무분별하게 ○+장연으로 확장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어 "게임 안에서 ○+장연 밈이 유행했던 맥락도 이해하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 단어가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조심하자'고 말해도 아이들은 '전장연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단체가 아니냐', '선생님이 왜 긁히는 거냐'는 태도를 많이 보인다"면서도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사 10명 중 9명 혐오표현 경험…현장은 '각자도생' 
 
이 같은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달 초 전국 초·중·고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3%가 '최근 1년간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왜곡 표현을 직접 보거나 전해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도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교사들은 혐오·차별·역사왜곡 표현 문제를 교육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이유에 관해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69.9%)과 '학부모 민원 및 외부 공격 우려'(60.1%)를 꼽았습니다. '관련 대응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다'는 응답은 2.1%에 그쳤습니다.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주장(왼쪽)이 지난 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광주제일고 야구부 주장에게 사과문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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