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기본소득 논쟁은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 미래전략 논쟁이었다. 당시는 미래였지만 지금은 현실이 된 AI 대전환. 대한민국은 이 파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4년 동안 국회 정무위와 산자위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왔던 김종민 의원이 7회에 걸친 연재 기고를 통해 대한민국 미래전략 '대전환 뉴딜'을 제안한다. 여러 쟁점에 대해 다양한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지난 글들에서 우리는 세 갈래 길을 그렸다. 초격차 기술을 지키는 전략 투자, 기업이 만들지 못하는 일자리를 사회가 만드는 일자리 투자, 모두의 자산소득을 키우는 국민자산 투자. 당연한 질문이 돌아온다. 그 막대한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세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세금을 더 걷기는 해야 한다. 복지와 안전망, 공공서비스는 지금처럼 세금으로 해야 하고, 필요한 곳에는 더 걷어야 한다. 다만 대전환에 필요한 투자의 규모는 세금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고, 세금에는 걷으려 할수록 걷기 어려워지는 속성이 있다. 세금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그 영역을 여는 열쇠가 오늘의 주제, 출자(出資)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산업부, 지재처, 기후부, 원안위 등에 대한 부처 업무보고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금의 벽, 네 번의 실패가 말하는 것
정부의 한 고위 인사가 인공지능이 낳은 이익을 국민과 나누자는 취지의 말을 꺼내자, 그날 주식시장이 한때 5% 넘게 급락했다. 이것이 '징수'라는 말의 무게다.
세계의 경험은 더 뼈아프다. 지난 10여년, 새로운 부에 세금을 물리려던 시도는 네 갈래 모두 좌절했다. 디지털세는 가장 큰 승자인 미국 기업들이 빠져나가며 반쪽이 됐고, 로봇세는 유럽의회에서 부결됐다. 횡재세는 거두려던 돈의 3분의 1밖에 걷지 못했고, 부유세는 부가 국경을 넘어 도망치는 통에 열두 나라에서 몇 나라로 줄었다. 자본은 국경이 없고, '걷는다'는 말은 그 자체로 '빼앗는다'는 뜻을 품어 꺼내는 순간 저항에 부딪힌다.
더 깊은 곳에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 세금은 시장이 모두에게 노동소득을 나눠 준다는 전제 위에서 설계된 제도다. 넓은 노동소득이 있어야 넓은 세원이 있고 복지국가가 선다. 그런데 AI 대전환은 바로 그 전제를 흔든다. 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는데 고용은 늘지 않는다. 세원이 얇아지는 시대에 더 걷어 더 큰 전환 비용을 대겠다는 것은 마르는 우물에서 더 많은 물을 긷겠다는 계획이다. 시장의 구조가 바뀌었으면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고 책임이 사라지는가 - 데이터, 로봇, 탄소
물론 성공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오늘날 초거대 기업의 수익에는 사회가 함께 만든 몫, 이른바 '사회적 수익'이 겹쳐 있다. 빅테크의 부를 낳는 데이터는 수억 명의 개인이 만들었고, 데이터가 흐르는 고속도로는 공공의 투자로 만들었다. 로봇과 AI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면 기업의 부가 커지는 만큼 임금이라는 환류가 줄어들고, 그 몫은 기업의 이익 속으로 옮겨 간다. 매출이 커질수록 늘어나는 탄소의 비용은 해당 기업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청구된다. 데이터세, 로봇세, 탄소세. 명분은 셋 다 정당하다. 그러나 세금이라는 방식 때문에 많이 걷을 수 없고, 조금 걷어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답은 명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걷는 것이 아니라, 함께 투자하는 것으로.
고인 돈은 경제를 병들게 한다
과잉 자산은 우리 사회 곳곳에 그냥 '고여' 있다. 은행에 10억원 넘게 들어 있는 개인과 법인의 고액 예금이 지난해 821조원에 달했고, 시가총액 상위 열 개 기업이 굴리지 않고 쥐고 있는 현금성 자산만 230조원이 넘는다. 민간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기금 형태로 쌓아둔 여유자금이 56조원을 넘는다.
이 돈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상당 부분은 고여서 순환하지 않는, '잉여자산'이라 부를 만한 돈이다. 회계장부의 숫자인 사내유보금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놀고 있는 현금과 예금이다. 고인 돈은 주인에게는 안전해 보이지만 경제 전체에는 병이 된다. 잉여자산을 흐르게 하는 것은 누군가의 몫을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효율을 살리는 일이다. 돈은 돌 때 불어난다.
2011년 1월12일 미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인텔 본사에 인텔 로고가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세금이 아니라 출자로 만드는 '미래투자기금'
어떻게 흐르게 할 것인가. 답은 출자다. 자본을 대고 그 대가로 지분과 권리를 받는 것이다. 위험을 함께 지고, 성과를 함께 나누며, 언젠가 돌려받을 수도 있다. 세금이 소유를 의미하는 명사라면, 출자는 순환과 연결을 의미하는 동사다. 잉여자산을 징수가 아닌 출자 방식으로 모아 '미래투자기금'을 만들고, 이 돈을 전략 투자, 일자리 투자, 국민자산 투자를 통해 순환시키자는 것이다.
공상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인텔에 보조금을 거저 주는 대신 그 돈을 지분 약 10%로 바꿔 최대주주가 됐다. 노르웨이는 석유로 번 돈을 국부펀드에 넣어 전 세계 기업의 주주가 됐고, 한 해 300조원이 넘는 투자 수익을 올린다. 걷는 국가에서 투자하는 국가로, 세계는 이미 방향을 틀었다.
창신메모리(CXMT) 반도체. (바이두 제공, 뉴시스 사진)
한 지방정부가 벌어들인 212조원
더 극적인 사례가 있다. 지난 7월27일 중국의 D램 기업 창신메모리가 상하이 증시에 상장했다. 최대 수혜자는 재벌가가 아니라 허페이시, 지방정부였다. 허페이시와 안후이성 정부가 보유한 지분 33%의 평가 차익이 1조위안, 우리 돈 212조원으로, 시 1년 예산의 12배다. 2016년 허페이는 연간 재정수입의 3분의 1을 반도체에 쏟아부었고, 모두가 '미친 도박'이라 했다. 허페이는 보조금을 주지 않았다. 지분에 투자했다. 보조금이었다면 쓰고 사라졌을 돈이, 출자였기에 212조원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걷는 돈'과 '넣는 돈'의 차이다. 디스플레이에서 회수한 성과가 반도체의 밑천이 되고 다시 전기차로 흘렀다. 세금이라면 불가능했을 순환이다.
우리도 첫발을 뗐다.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호황의 추가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으로 적립해 미래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정확히 맞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추가 세수는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면 함께 줄어들고, 여전히 '걷은 돈'의 틀 안에 있어 쓰면 사라진다. 미래대응기금이 마중물이라면 본류가 필요하다. 시장의 돈이 스스로 흘러드는 구조, '미래투자기금'을 생각해 보자.
김종민 무소속 의원. (사진=주간경향)
어떻게 모으는가 - 다섯 갈래의 물줄기
'미래투자기금'을 어떻게 모을까. 조성부터 다양해야 강요가 아닌 사회적 기금이 된다. 첫째, 대전환의 특수를 누리는 고수익 기업의 출자다. 기업은 대가로 지분과 배당, 회수의 권리를 갖는다. 둘째, 낮은 금리에 잠자는 자산가의 잉여자산이다. 원금의 안전과 안정적인 배당을 설계해 기금으로 흐르게 하자. 셋째, 선한 기부의 조직화다. 투명한 사용처로 흩어진 선의를 모은다. 넷째, 국민의 출자 참여다. 100만원부터 형편대로 출자하고 지분만큼 배당받는, 국민자산제와 자연스럽게 만나는 길이다. 다섯째, 국가 예산이 마중물과 손실 완충으로 더해진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내고, 모두가 무언가를 받는다. 징수가 아니라 순환이고,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어떻게 작동하는가 - 다섯 가지 설계
작동 원리는 다섯 가지다. 첫째, '쓰고 남은 돈'이 아니라 먼저 몫을 정한다. 둘째, 기준은 '끊긴 환류', 곧 고용과 임금으로 사회에 돌아가는 몫이 줄어든 그만큼이다. 셋째, 돌려받을 수 있다. 10년이면 3분의 1, 20년이면 전부를 되찾는 회수 옵션이 심리적 저항을 낮춘다. 넷째, 소유와 활용을 분리한다. 소유는 그대로 두고 활용만 일정 기간 사회와 함께하니 사유재산 질서는 근본적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다섯째, 참여에는 실익이 따른다. 기업에는 지분·배당·세제 혜택이, 자산가에게는 장기 안정 수익과 상속 인센티브가, 국민 출자자에게는 배당과 미래 자산이 돌아간다. 무엇보다 이 기금이 키우는 인재와 인프라, 국민의 자산과 구매력은 곧 기업이 설 시장이다. 출자는 기업의 오늘 수익을 내일의 더 큰 시장으로 돌려주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미래투자기금' 출자의 명분이다.
어떻게 굴리는가 - 세 개의 펀드
모은 돈은 성격에 따라 세 개의 펀드로 나눈다. 이 세 펀드가 곧 대전환 뉴딜의 3대 투자다.
첫째, 전략 투자펀드는 고위험·고수익이다. AI·에너지·산업 전환에 투자하되 예산이 후순위에서 손실을 완충해 위험을 나눈다.
둘째, 일자리 투자펀드는 SOC처럼 사람과 사회의 인프라에 투자해 간접 회수되는 돈이다. 예산이 몸통이 되고, 민간 자본으로 먼저 짓고 국가가 장기 상환하는 민자 방식을 사회 인프라에 결합한다.
셋째, 국민자산 펀드는 수익이 핵심이다. 연평균 9%를 낸 캐나다 연기금처럼 정치와 분리된 전문 운용으로 굴려 국민 출자자가 지분만큼 배당받는다.
위험이 큰 돈에는 예산이 방패, 회수가 어려운 돈에는 몸통, 수익이 중요한 돈에는 마중물. 허페이가 보여줬듯, 전략투자의 성공이 일자리가 되고 일자리의 성과가 국민의 자산이 된다.
이재명(왼쪽) 대통령과 김종민 무소속 의원. (사진=청와대, 김종민 의원 페이스북 캡처)
금융으로 맺는 '새로운 사회계약'
"사실상의 증세 아닌가." 아니다. 세금은 반대급부 없이 걷어 가면 끝이지만, 출자는 지분·배당·회수권이 따른다. 걷혀서 사라지는 돈과 투자되어 돌아오는 돈, 어느 쪽이 나은가.
"기업 돈 빼앗기 아닌가." 대상은 쓸 곳을 못 찾아 쌓인 잉여자산이고, 소유는 그대로다. 잠자던 돈이 배당으로 돌아온다면 빼앗기는 게 아니라 운용이다. 개별 기업과 부자 개인이 각자 운용하지만 말고 그 자산의 일부를 공공에 맡겨 순환시키자는 것이다. 기업과 자산가는 표적이 아니라 파트너이자 주주다.
"국가가 굴리다 날리면 누가 책임지는가." 그래서 세 펀드로 나누고, 위험은 예산이 먼저 떠안고, 수익은 정치와 분리된 전문가가 굴린다. 노르웨이와 캐나다가 수십 년간 증명한 방식이다.
세금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세금만으로는 AI 대전환을 감당할 수 없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막대한 부가 만들어지지만 승자독식 블랙홀에 고이는 게 문제다. 고인 부를 다섯 갈래의 출자로 모으고 세 개의 펀드로 나누어 굴리는 것. 그 물길이 '미래투자기금'이고, 그 원리가 '고인 것을 흐르게 하는 순환 전략'이다. 100년 전의 뉴딜이 법과 제도와 세금으로 맺은 사회계약이었다면, 대전환 뉴딜은 여기에 '금융' 하나를 더해서 맺는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그 큰돈을 맡아 굴리는 국가를, 우리는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세금이 아닌 출자로 기금을 모으고 3대 투자에 쓰는 일은 결국 새로운 국민적 합의(National Consensus)가 필요한 일이다. 그 합의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이게 가능한가. 이 근본적 질문을 마지막 글에서 답한다.
대전환 뉴딜 연재 순서
1. 기업의 성공은 국민의 성공으로 이어지는가
- 왜 대전환 뉴딜인가, 승자독식 블랙홀, 3겹의 대전환, 초격차 민생, 정치의 일
2. 대전환 뉴딜, 어떻게 할 것인가
- 미래전략, 연결과 순환, 3대 미래투자, 새로운 돈, 새로운 국가
3. 대한민국은 계속 벌 수 있는가
- 전략투자, AX, GX, HX
4. 일자리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 일자리 대전환, 지능산업 일자리, 숙련의 시간, 활동소득
5. 근로소득이 흔들리면, 무엇으로 사는가
- 국민자산제, 자산소득 대중화, 농지개혁과 자산개혁
6.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 미래투자기금, 세금이 아닌 출자, 새로운 사회계약
7. 국가의 일, 시민의 일
- 전략국가, 스마트 국가, 스마트 민주주의
김종민 무소속 의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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