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희·이지유 기자] 내년도 지방자치단체 금고지기 자리를 두고 은행들의 물밑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서울시금고 선정이 마무리된 가운데 인천시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경북도 등 총 57조원 규모의 예산을 운용하는 광역지자체 금고 선정이 잇따라 예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별 평가 기준이 달라지고 일부는 단체장이 바뀌거나 지방정권이 교체되면서 은행별 셈법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운영수익보다 '자금·사업 확대' 장점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은행과의 금고 계약이 끝나는 지자체는 총 79곳입니다. 연간 51조원 규모의 예산을 관리하는 서울시금고 선정이 지난 5월 마무리됐고, 연말까지 주요 지방자치단체 금고 선정이 줄줄이 예정되면서 은행들은 일찌감치 유치전에 돌입했습니다.
광역단체 중 하반기 금고 선정을 하는 인천시와 전남광주시, 경북도의 연간 예산 규모는 각각 약 17조원, 25조원, 15조원으로 총 57조원에 달합니다.
주요 승부처인 인천시금고의 경우 현재 제1금고는 신한은행이, 제2금고는 NH농협은행이 각각 맡고 있습니다. 이번 경쟁은 20년간 인천시금고를 운영해 온 신한은행과 인천 청라국제도시로 본사를 옮기는 하나은행의 2파전으로 압축되는 분위기입니다.
신한은행은 인천시금고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며 방어전 준비에 나섰습니다. 안정적인 전산 시스템과 풍부한 공공금융 운영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하나은행은 그동안 인천시금고 선정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신 만큼 지역 밀착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오는 9월 청라 본사 이전으로 지역사회 기여도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광주전남시 금고 역시 격전지 중 하나입니다. 연간 재정 규모는 전남도 예산 12조원, 광주시 예산 8조원, 정부 통합지원금 연간 5조원 등을 포함해 약 25조원으로 추산됩니다.
지난 5월 치러진 '6개월 단기 금고' 입찰에서는 제1금고에 NH농협은행, 제2금고에 광주은행이 각각 선정됐습니다. 이는 지난 7월 전남광주시 출범에 맞춰 연말까지 재정을 맡을 금융기관을 우선 선정한 것으로, 출범 초기 안정적인 재정 운영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4년간 시금고를 운영할 금융기관을 뽑는 정식 입찰은 오는 9월 공모를 시작으로 10월 중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본선 격인 이번 입찰에는 대형 시중은행들이 가세할 것으로 보여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예산이 1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경북도 금고 선정도 예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지방 금고는 통상적으로 NH농협은행이나 지방은행이 유리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자본력을 앞세운 시중은행들의 진입이 늘고 있어 시중은행의 쟁탈 여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처럼 지자체·공공기관 금고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것은 금고 운영에 따른 부수 효과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이 기대하는 건 금고 운영 수익 자체보다 안정적인 자금 확보와 향후 거래 확대 가능성입니다. 실제로 입찰 경쟁 과정에서 쓰이는 출연금과 협력사업비, 수납·전산 시스템 구축 등을 감안하면 금고 운영 수익 자체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만 시·도금고를 유치할 경우 금고은행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저원가성 예금을 유치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지자체의 각종 사업을 수주하는 데 유리한 데다 관련 기관 영업을 통해 거래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기. (사진=뉴시스)
단체장 바뀌고 평가기준 손질 '변수'
이번 금고 경쟁에는 과거와 다른 변수가 있습니다. 우선 6·3 지방선거 이후 일부 지자체장이 새롭게 선출되거나 정당이 바뀌면서 금고 선정 과정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전남광주시는 단체장이 바뀌었고, 인천시장은 국민의힘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금고 지정은 조례에 따른 평가를 거쳐 이뤄지지만, 새 집행부 출범 이후 정책 방향과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자체장이 교체되면 기존에 쌓아온 네트워크나 협력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금고 유치 전략도 바뀔 수 있어 기존보다 경쟁 강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지역별 평가 기준 변화는 은행들의 유치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꼽힙니다. 인천시는 시금고 지정 평가에서 지역사회 기여 실적과 금리 항목에 대한 비중을 이전보다 확대했습니다. 금융기관 간 금리 차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사회 기여 항목에서 당락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나옵니다.
전남광주시는 금고 선정 평가 기준에서 수시 입출금식 예금 적용 금리 배점이 기존 3점에서 8점으로 대폭 상향됐습니다. 금리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시중은행의 공세에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진 지방은행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변수입니다. 현재 지방 지자체 금고는 NH농협은행과 주요 시중은행이 영역을 넓혀가는 구조입니다.
지방은행들은 국외 신용평가기관 평가 기준 등 일부 금고 평가 항목이 지방은행에 불리한 구조라며 행정안전부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국제 신용등급 평가에서 비교적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지역농협(단위농협)의 실적을 NH농협은행 평가에 반영하는 현행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요구도 내놓고 있습니다. NH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이 별도 법인인 만큼 지역농협의 실적을 NH농협은행 성과로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입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자체가 금고를 선정할 때 제안서 평가를 진행하는데 평가 항목에 점포 수가 포함돼 있다"면서 "금고 선정은 정해진 평가 배점표에 따라 이뤄지는 만큼 평가 자체에 외부에서 관여하기는 어렵지만, 평가 항목을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융권 안팎에선 NH농협은행의 독점 해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협은행이 지방에서 금고를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어 지방은행들이 지역 내 영업을 확대하려고 해도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짚었습니다.
김 교수는 "농협은행의 지역농협 실적 반영 여부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지방은행과 상호금융 등 다양한 금융기관이 금고 업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현재 금고 선정에 필요한 재무 요건 등이 지나치게 높아 참여 자체가 제한되는 만큼 관련 요건을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