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쟁만 있지 대표감은 없는 민주당 선거
2026-08-14 06:00:00 2026-08-14 06:00:00
김 선배, 별고 없으신지요. 
이런 더위는 정말 처음입니다. 이 극한 더위도 아랑곳없이 세상이 몇 주째 민주당 선거로 시끄럽기에 후보자 연설 모음을 찾아봤습니다. 제 이해력의 문제일까요. 저는 각급 후보들이 사생결단 전쟁을 벌이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군요. 항간에는 제2의 ‘비명횡사 공천’ 하려고 저러는 거라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글쎄요…. 차기 총선 공천권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 ‘대통령 퇴임 후 안전판?’ 도대체 언제나 그런 법치 파괴와 언어도단이 사라질까요. 민주공화국에 안전판 같은 단어가 성립 가능합니까. 후보들 저마다 자기가 대통령을 지킨다고 기를 쓰더군요. 법대로 하면 되는 걸 왜 호위무사 충성 경쟁을 하는지 어이가 없습니다. 왕조시대보다 더해요. 누가 지킨다고 지켜지는 거면 근대국가가 아니라 부족국가지요. 법치가 아니라 인치고요. 
 
김 선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던가요. 후보들 연설을 들어보니 대표가 아니라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임미애 의원이 조리가 정연하고, 전국 정당이라는 비전도 선명해 믿음이 가더군요. 단연 발군이랄까요. 연설 찾아 한번 들어보시지요. 그가 이번 전당대회를 누구의 패거리가 되어 최고위원에 막차 탑승하는 무대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 목표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더군요. 이른바 ‘친명-친청’ 따위 분류나 계파 패거리에 오염될까 봐 걱정도 됐습니다. 대표가 아닌 최고위원 후보에게서 대표감을 본다는 것, 초거대 정당 민주당의 현실이자 아이러니고 희비극입니다. 
 
김 선배.
아시다시피 저는 패거리 활동이 정치로 오인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백안시하는 백면서생입니다. 졸견이겠으나, 임 의원은 친명-반명 따위가 아니라 친시민(市民)파, 친상식파, 친합리파로 명명되고 분류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시절 노무현처럼. 
 
정치 이력으로나 헌신성으로나 뉴 리더는 임 의원 같은 사람이 적합하다고 봅니다. 당내 탈레반들이나 목소리‘만’ 큰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상식과 합리를 견지해 온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험지 TK에서 20여년간 당을 지키고 생색내지 않으며 시민들과 함께해 왔다더군요. 
 
미안하지만, 임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청와대의 공깃돌이거나 사적 욕망의 화신 같았습니다. 도덕성도, 정직함이나 겸손도, 시대정신도 부족해 보입니다. 일테면 자당 대선후보 배신이나 ‘배추밭의 기적’ 같은 행적과 허물, “주석야청”이라는 상상 불가의 호남 모독…. 더 이상의 재방송은 안 할랍니다. 그런 걸 능력이나 투쟁성과인양 견장처럼 매달고 다니는 것에 그만 환멸이 느껴졌습니다. 분노는 어찌어찌 참아지지만 구토감은 참기 어렵잖던가요. 서로 날 세우면서 공격하는 걸 들어보니 모두 다 문제가 심각하더군요. 역설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 시민들에게 정확히 보여준 건 ‘사이좋게 잘한 일’이라고 해야 하나요? 웃픕니다. 
 
그들은 이미 시대정신에 안 맞는데 그간의 관성 때문에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그래서 사람들이 ‘정계’가 아니라 정치‘판’이라 비하하는지도 모르지요). 기회만 생기면 나서고 또 나서는 그 관성. 나이 들어가고 정치 이력이 쌓이며 욕심도 눈덩이처럼 커졌겠지요. 그들은 이번 ‘논란적 정치 과잉 선거’의 원인 제공자이자 수혜자들이고, 진입 장벽 덕을 톡톡히 보는 ‘불공정 시장 조성자’들입니다. 그러니 정치가 손가락질당하고 백안시되는 거 아닐까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 결과 발표에서 본경선에 진출한 당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출마자 전원에게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답더냐’던 이형기 시인의 글을 권하고 싶어지더군요. 우이독경에 마이동풍이겠지만.
 
‘저렇게 전국 순회 전쟁하면서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거나, ‘저러다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충 덮을지 아리송하다’는 분들, ‘당이 쪼개지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 시민들 걱정의 갈래가 참 다양하더군요. 정치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확인하는 것은 우울한 일입니다. 
 
남은 여름 무탈히 건너시고, 선선한 바람 불거든 자리 한 번 하시지요. 제 불민함 고쳐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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