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근조화환 뒤로 펼쳐진 잔디밭…'집터'로 소환된 용산공원
2026-08-20 16:23:51 2026-08-20 17:12:34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시든 근조 화환 뒤로 아이들이 뛰어다녔습니다. 서울 한복판, 120년 가까이 외국 군대가 주둔했던 용산의 땅은 이제 시민들의 공원이 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이 일대를 주택 공급 후보지로 검토하면서 평온했던 녹지는 다시 개발 논쟁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20일 오전 서울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1번 출구에서 3분 남짓 걸으니 용산어린이정원 정문 앞 한마음공원이 나타났습니다. 공원 주변으로는 주택 공급에 반대하는 근조 화환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리본에는 ‘어린이가 없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자연은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의 어린이가 숨 쉴 공간’이라는 문구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화환 뒤 놀이터에서는 아이 아홉 명가량이 미끄럼틀과 그네를 오가고 놀이시설을 오르며 술래잡기에 한창이었습니다. 
 
용산어린이정원 정문 앞 한마음공원에 용산공원 개발을 반대하는 근조 화환들이 놓여 있다. (사진=홍연 기자)
 
용산어린이정원 정문을 지나 종합안내센터와 홍보관을 지나면 이벤트하우스와 미개방 건물들이 이어지는 완만한 구릉길이 나왔습니다. 이 길을 따라 5분 정도 걷거나 전기 셔틀버스로 한 정거장을 이동하면 넓은 잔디마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완만한 언덕을 넘어 도착한 잔디마당은 입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한편에는 고층 주상복합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다른 한편에는 남산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잔디마당의 북쪽 끝은 또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잔디마당에서 국방부 청사와 맞닿은 경계에는 철조망과 높은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국가중요시설 및 군사보안시설’ 안내판과 함께 무단 출입 금지, 사진·영상 촬영 및 드론 비행 금지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시민에게 반환된 공원과 여전히 담장 너머에 있는 군사시설이 불과 몇 걸음 사이를 두고 공존했습니다.
 
국방부 청사 인근 잔디마당 펜스에 국방부 방향 사진·영상 촬영, 드론 비행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홍연 기자)
 
부슬비가 내리자 녹음은 더욱 짙어졌고, 젖은 흙냄새 사이로 매미 소리가 공원을 가득 메웠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사원증을 목에 건 인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산책에 나섰고, 피크닉을 즐기거나 나란히 걷는 커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평일 정오라 공원은 붐비기보다 일상이 차분히 흐르는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홍보관 앞 정류장에서는 매시간 30분 간격으로 전기 셔틀이 운행됐습니다. 출발한 셔틀에는 아이 둘과 보호자 두 명이 탑승했고, 이들은 분수정원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종합안내센터로 회차하는 차량에는 인근 어린이집 원생 10여명이 교사들과 함께 우르르 올라탔습니다. 조용했던 셔틀은 순식간에 아이들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분수정원에서 만난 용산구 동부이촌동 주민 A씨(40대)는 "아이 친구 엄마들이 좋다고 해서 처음 와봤는데 체험관도 많고 어린이 야구장, 축구장도 있어 애들이 뛰어놀기 좋다"면서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녹지를 오래 즐겼으면 하는데 주택을 짓는다는 이야기가 나와 아쉽다"라고 말했습니다. 
 
용산어린이정원 잔디마당에서 시민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홍연 기자)

120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 ‘금단의 땅’
 
용산이 시민의 공간이 되기까지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사기지로 사용된 이곳은 해방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하며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히 제한됐습니다. 1952년 정부가 용산기지를 미군에 정식 공여했고, 이후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용산은 서울 한복판의 ‘금단의 땅’으로 남았습니다. 
 
반환 논의는 2003년 한미 양국이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에 합의하면서 본격화했습니다. 2004년 이전 협정이 국회 비준을 통과했고, 2007년에는 공원 외 용도 변경과 매각을 제한하는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2011년 종합기본계획이 마련된 뒤 미군 이전과 부지 반환이 순차적으로 이뤄졌고, 2023년 5월 사우스포스트 남측 약 30만㎡가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임시 개방되면서 120년 가까이 외국군이 주둔했던 땅이 처음 시민에게 돌아왔습니다. 
 
용산공원 전체 면적은 300만㎡에 달합니다. 서울숲과 북서울꿈의숲, 여의도공원보다 큰 규모지만 실제 반환된 면적은 76만8000㎡로 전체의 25.6%에 불과합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어린이정원 역시 이 거대한 국가공원 계획의 일부일 뿐입니다.
 
정부는 어린이정원뿐 아니라 장교 숙소 5단지와 옛 방위사업청, 군인아파트 등 이미 개발됐던 부지까지 주택 공급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지는 2021년 국토교통부 기본계획 변경안에서 남산과 용산공원을 잇는 녹지 축이자 생태공간으로 구상된 곳입니다. 
 
무엇보다 실제 공급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이 적지 않습니다. 반환된 부지라도 토양·지하수 오염 정화와 문화재 조사, 도시계획 변경, 특별법 개정과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2020년 반환된 캠프킴 부지조차 오염 정화와 문화재 발굴로 착공 시점이 2029년으로 예상되는 만큼, 용산공원 본체의 주택 공급은 단기간에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한편, 이날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공원 주택 조성에 대한 비공개 면담을 가졌지만 결론은 내리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훼손 부지의 제한적 활용 가능성을, 서울시는 공원 보존 원칙을 각각 유지한 채 입장 차만 확인했고 양측은 다음 주 다시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120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온 용산공원은 이제 공원과 집터 사이에서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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