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된 분단은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극은 훗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의 방위산업을 키운 토양이 됐습니다. 끊임없는 안보 불안 속에서 무기를 개발하고, 개량하고, 생산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등 주요 방산국들이 냉전 종식 이후 군비와 재래식 전력, 생산능력을 점차 줄여온 것과 대비됩니다. 이후 글로벌 안보 불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 수요가 폭증하면서, 오랫동안 유지해 온 한국의 기술·생산 기반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분단의 역설’이 나타난 것입니다.
육군 5사단 GOP 장병들이 철책을 따라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육군)
‘자주국방’서 비롯된 K방산
한국 방산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계기는 1969년 미국이 발표한 이른바 ‘닉슨 독트린’이었습니다. 아시아 동맹국 스스로 방위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주한미군 감축까지 추진되면서 한국에는 ‘미군이 언제까지 우리의 안보를 책임져 줄 수 있겠느냐’는 불안이 짙어졌습니다. 그러나 휴전선 너머 북한의 위협은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박정희 정부가 꺼내 든 답은 ‘자주국방’이었습니다.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세우고, 직접 무기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깔기 시작했습니다. 민간기업의 역량도 하나씩 방산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한국화약(현 한화)은 1972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됐고 풍산은 1973년 탄약생산업체로 지정됐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안보 문제를 두고 상당한 고민을 했었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각 기업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방산과 연결해 키워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선택은 수십 년에 걸친 투자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방산 수출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주요 무기체계의 국산화와 연구개발에 꾸준히 투자하며 기술과 생산 기반을 쌓아왔습니다. 분단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면서 국내 군 수요를 바탕으로 방산 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것입니다.
특히 국방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흐름은 2006년 방위사업청 출범 이후 한층 뚜렷해졌습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06년 국방 R&D 예산은 1조595억원이었습니다. 이후 △2010년 1조7945억원 △2014년 2조3345억원 △2018년 2조9017억원 △2022년 4조8310억원으로 꾸준히 확대됐습니다. 2026년에는 5조8396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까지 늘었습니다. 2006년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국방 R&D 예산이 약 5.5배로 커진 셈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 같은 투자는 실제 기술 축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차 분야에서는 K1과 K1A1 개발 경험이 K2로 이어졌고, 자주포 분야에서는 K55 등의 개발·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K9을 완성했습니다. 항공 분야에서는 T-50 고등훈련기를 기반으로 FA-50 경공격기를 계열화했고, 방공 분야에서는 천궁에서 천궁-II, L-SAM으로 요격 능력을 넓혔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분단 상태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지속적으로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전차와 자주포, 유도무기 등 주요 무기체계의 개발과 생산을 멈출 수 없었다”며 “K2나 K9 같은 무기체계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내 군 소요에 맞춰 수십 년간 개발과 개량을 반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수출이 많지 않던 시기에도 생산라인과 협력업체를 유지해온 덕분에 해외 수요가 급증했을 때 비교적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월 25대→1.5대…유럽의 빈틈
반면 유럽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유럽 주요국들은 일제히 군비와 재래식 전력을 줄였고, 방산 연구개발과 생산능력도 함께 축소했습니다. 영국 군사·방산 전문 기관 제인스(Janes)에 따르면 독일 레오파르트2는 냉전기인 1982년 연간 300대, 월 25대 수준까지 생산됐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신규 수요가 줄면서 대량생산 체계도 빠르게 쪼그라들었습니다.
송방원 건국대학교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레오파르트2 신규 생산능력이 연간 10대 안팎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유럽도 2030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공급망과 숙련인력, 정치적 변수에 따라 일정은 더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유럽의 생산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하는 동시에 줄어든 자국 재고도 보충해야 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재무장까지 겹치면서 전차와 자주포, 탄약 등 재래식 무기 수요가 한꺼번에 폭증했습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한국이었습니다. 국내 군 수요를 바탕으로 이미 생산라인과 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던 한국은 대규모 물량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공급할 수 있었고, 빠른 납기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각됐습니다.
지난 2024년 3월 K2 전차가 폴란드 그드니아 항구에 도착해 하역되고 있다. (사진=현대로템)
이 같은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1~2025년 유럽의 주요 무기 수입은 직전 5년보다 210% 증가했고, 한국은 유럽 NATO 회원국 무기 수입의 8.6%를 공급해 미국에 이어 두 번째 공급국에 올랐습니다. 한국의 세계 주요 무기 수출 점유율도 2010~2014년 0.9%에서 2021~2025년 3.0%로 높아져 세계 9위를 기록했습니다.
결국 K방산의 도약은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습니다. 분단과 북한의 위협 속에서 수십 년간 기술과 생산 기반을 쌓아온 것이 충분조건이었다면, 냉전 이후 유럽의 방산 축소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폭증한 재무장 수요는 필요조건이었습니다. 준비된 생산능력과 갑자기 열린 시장이 같은 시점에 만난 것입니다.
송 교수는 “전쟁이 터진 뒤 준비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한국은 북한이라는 위협에 대응하면서 방산 기반을 꾸준히 유지하고 성장시켜왔고, 여기에 해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내부 역량과 외부 수요가 맞물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특히 전차와 자주포, 천무 등 주요 무기체계의 국내 군 공급이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상당 부분 마무리돼 생산라인 유지 여부를 고민하던 시점에 해외 수요가 본격화됐다는 점도 절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3회에서는 K방산의 현재 성과가 ‘전쟁 특수’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산업 구조와 정책 과제를 짚어봅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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