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숨소리)사라진 '숲의 농부', 다람쥐
2026-09-04 10:44:23 2026-09-04 10:44:23
[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어릴 적 문방구 앞이나 집 마당 한구석, 철사로 만든 쳇바퀴를 밤낮없이 맹렬하게 돌리던 다람쥐를 기억하시나요? 지금의 고양이용품 '캣휠'처럼, 그 시절엔 들에서 잡은 다람쥐를 좁은 새장에 가두고 쳇바퀴를 돌리게 하며 구경거리로 삼던 풍경이 흔했습니다. 앙증맞은 발로 바퀴를 굴리던 모습은 신기함과 동시에 연민을 불러일으키곤 했지요. 하지만 옛날엔 동네 뒷산만 가도 흔했던 그 많던 다람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다람쥐가 월악산 숲속에서 다래열매를 따먹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청설모가 텃세를 부려 다람쥐를 쫓아냈다"라거나 "길고양이가 늘어서", 혹은 "참매나 올빼미,큰부리까마귀 같은 천적에게 포식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짜 핵심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산림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과거 우리 산에는 도토리, 밤, 온갖 과실을 내어주는 활엽수림이 울창했습니다. 그러나 도시 확장과 도로 개설로 숲이 단절되고, 침엽수 위주의 조림 사업이 진행되면서 다양한 먹이와 안전한 굴을 제공하던 터전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요즘은 큰 국립공원 깊은 골짜기나 가야 겨우 눈에 띄고, 먹이가 부족해 등산객이 떨어뜨린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모습은 서글픈 단면입니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청설모는 다람쥐의 적이 아닙니다. 청설모 역시 잣이나 가래나무 열매를 주로 먹는 채식 위주의 잡식성 동물이자 숲의 정당한 구성원입니다. 두 종은 외모와 생활 양식에서 아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다람쥐는 몸집이 작고 등에 선명한 다섯 줄의 검은 줄무늬가 있지만 청설모는 몸집이 크고 등 전체가 어두운 회갈색을 띱니다.
 
또한 주 서식지와 겨울나기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납니다. 다람쥐는 뼛속까지 '땅위생활자'라서 바위틈이나 땅속에 굴을 파고 살지만, 청설모는 주로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틀고 나무 위에서 생활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겨울잠 여부입니다.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에 단골로 등장하듯 다람쥐는 대표적인 겨울잠 동물입니다. 가을이 오면 볼주머니에 도토리를 가득 채워 땅속 저장고로 날라 채운 뒤, 추위가 오면 체온을 5℃ 근처까지 낮추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중간중간 깨어나 저장해 둔 도토리를 먹고 다시 잠드는 반동면 형태를 취하지요. 반면 청설모는 겨울잠을 자지 않고 털을 수북하게 키워 겨울에도 활동합니다.

몇해 전 서울 도봉산에 나타난 흰 다람쥐. 알비노(백화)개체로 털이 온통 하얀 흰 다람쥐다.
 
다람쥐의 번식 생태 역시 숲의 생명력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른 봄,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는 곧바로 짝짓기를 시작합니다. 임신 기간은 약 30일 정도로 매우 짧으며, 한 번에 3~6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영양 상태가 좋은 해에는 가을에 한 번 더 번식하기도 합니다. 갓 태어난 새끼는 털도 없고 눈도 못 뜨지만, 어미의 보살핌 속에 불과 한 달여 만에 독립하여 스스로 먹이를 찾습니다. 이처럼 왕성한 번식력을 가졌음에도 서식지 파괴 앞에서는 개체 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체구는 작지만, 다람쥐는 참나무 숲을 가꾸는 '으뜸 농부'입니다. 건망증이 심한 다람쥐는 가을철 땅속 곳곳에 묻어둔 도토리의 위치를 절반 이상 잊어버리는데, 이 잊힌 도토리들이 봄에 싹을 틔워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자라납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서도 다람쥐는 친숙했습니다. 조선 시대 민화나 도자기, 공예품에 자주 등장하는 '포도다람쥐문'이 대표적입니다. 넝쿨째 열리는 포도는 다산(多産)을, 부지런히 먹이를 모으는 다람쥐는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상징했습니다. 조상들은 다람쥐의 부지런함을 삶의 귀감이자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한편, 미국이나 북미 대륙에서 흔히 만나는 다람쥐는 우리 토종과 모습이 꽤 다릅니다. 미국 공원에서 자주 보이는 꼬리가 풍성하고 몸집이 큰 녀석들은 '동부회색다람쥐'나 나무다람쥐 종류입니다. 북미에도 줄무늬가 있는 '칩멍크'가 살지만, 세부 패턴과 아기자기한 멋에서 우리 다람쥐와는 구별됩니다. 우리나라 토종 다람쥐는 한반도를 비롯해 시베리아, 중국 북부, 일본 홋카이도 등 동아시아 북부권에 주로 분포합니다. 특유의 선명한 줄무늬와 귀여운 외모 덕분에 과거에는 유럽 등 해외로 대량 수출되어 사랑받는 반려동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추억 속 쳇바퀴를 돌리던 다람쥐가 다시 우리 동네 뒷산으로 돌아오려면, 다양한 활엽수가 어우러진 건강한 숲 복원이 시급합니다.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에게 함부로 사람 음식을 주지 않고 도토리 한 알이라도 자연에 남겨두는 배려야말로, 녀석들이 숲의 주인이자 농부로 살아가게 돕는 참된 사랑일 것입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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