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윤석열씨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재판장을 지낸 지귀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변호사들로부터 400만원대 향응을 접대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애초 함께 고발됐던 뇌물수수 혐의는 빠지고,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습니다. 문제는 청탁금지법이 공수처가 직접 기소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범죄 없이 '관련범죄'만으로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에 대한 법리 다툼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26년 2월19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윤석열씨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기일에서 피고인들에게 주문을 선고하고 있다. (사진= 서울중앙지법 제공)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는 4일 지 부장판사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공수처에 따르면, 지 부장판사가 향응을 받은 것은 총 두 차례입니다. 먼저 지난 2023년 8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예약제 주점에서 A·B변호사에게 409만원 상당의 술값을 결제하도록 한 혐의입니다. 1인당으로 따져도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향응을 제공받은 셈입니다.
공수처는 다만 지 부장판사가 받은 향응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뇌물 혐의가 아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접대 당시 지 부장판사가 속한 재판부에 이들이 수임한 사건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뇌물죄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과 관계 없이 공직자가 일정 기준 이상 금품 등을 받으면 처벌하도록 하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2024년 9월 지 부장판사를 포함한 5명이 같은 주점에서 약 416만원 상당 술값을 지출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1인당 향응액이 83만원으로 100만원 미만이고, 직무 관련성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2차 사례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민주당이 지난 2025년 5월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지귀연 판사 룸살롱 접대 의혹'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사진=민주당 제공)
지 부장판사의 룸살롱 접대 의혹은 지난해 5월 민주당이 지 부장판사가 주점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변호사 2명과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이어 같은 달 한 시민단체가 지 부장판사를 뇌물수수 및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공수처의 공식 수사로 이어졌습니다.
공수처는 지난해 8월 피의자에 대한 통신영장 집행을 시작으로 진술 및 금융자료 확보에 나섰고, 지난해 11월 지 부장판사의 택시 호출 기록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올해 4~6월에는 지 부장판사와 향응 제공자 등을 소환 조사했습니다.
지 부장판사에 대한 수사 마무리까지 1년 넘게 걸린 데는 공수처의 법리적 검토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지 부장판사에게 적용한 청탁금지법 위반은 공수처법상 공수처가 직접 기소할 수 없는 혐의이지만, 예외적으로 공수처의 기소권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수처법 2조 4호 라목은 "고위공직자범죄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그 고위공직자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를 '관련범죄'로 규정해 기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수처는 지 부장판사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뇌물수수와 사실관계가 같고 대가성 유무로만 갈리는 만큼, 공수청의 기소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인 '직접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이대환 부장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범죄만 기소 가능하냐는 논란이 있었다"며 "수사심의위원회를 열어 관련범죄만으로도 기소 가능하다는 다수 의견을 받아냈다"고 밝혔습니다. 공수처가 관련범죄만으로 기소한 것은 처음입니다.
공수처는 지 부장판사에게 향응을 제공한 변호사 A·B씨에 대한 처분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장검사는 "변호사들에 대한 처분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수처법상 공수처는 청탁금지법 위반의 '공여자'(금품을 제공한 쪽)에 대해서는 별도 수사권이 없어, 다른 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기소권 공백'은 앞서 공수처 1호 인지 사건에서도 문제가 된 바 있습니다. 공수처가 자체 인지해 수사한 전직 경무관 뇌물 사건의 경우, 지난 8월 항소심에서 뇌물을 받은 경무관 본인은 징역 10년에서 집행유예로 대폭 감형됐고, 뇌물을 건넨 공여자 등 3명에 대해서는 아예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할 권한은 있지만, 고위공직자나 그 가족이 아닌 일반인을 직접 기소하고 공소를 유지할 권한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 공수처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가 이번 지 부장판사 건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청탁금지법 혐의만으로 기소하려면 법적 논리를 탄탄하게 구성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며 "고위공직자 뇌물 및 청탁의 경우, 공여자가 고위공직자가 아닐 경우가 많은데 '관련범죄' 등에 대해 공수처법이 명확해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