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소비자보호 성과 내세웠지만…핵심 과제는 미완
2026-09-17 14:45:28 2026-09-17 15:39:53
[뉴스토마토 이진희 기자] 금융감독원이 금융상품 전(全) 생애주기에 걸친 사전예방적 감독 체계를 구축하는 등 지난 1년간 금융소비자 보호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습니다. 다만 금융사의 단기 실적 중심 판매 관행이 여전한 데다 금융분쟁조정의 편면적 구속력과 민생금융범죄 특사경 도입 등 핵심 제도 개선이 여전히 미완인 상태로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전예방 체계 구축" 자평
 
17일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 성과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고 금융소비자 보호 개선 로드맵의 추진 성과와 향후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금감원은 주요 성과로 △소비자 중심 거버넌스 확립 △상품 생애주기별 사전예방적 감독 체계 구축 △서민·취약계층 지원 △AI 활용 감독·피해 구제 기반 확충 등을 제시했습니다.
 
금융소비자보호는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 온 핵심 기조입니다. 피해 발생 이후 구제에 집중하던 감독 방식을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고, 금감원 내부 업무 전반에도 소비자 보호 관점을 반영하는 데 주력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원장은 이날 "소비자 보호는 금융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신뢰의 토대"라며 "소비자 보호가 조직 전반에 내재화될 수 있도록 조직과 업무를 재설계했고, 소비자 중심 거버넌스 마련과 각 부문 간 환류 체계를 강화해 업무의 모든 과정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금감원은 지난 1월 조직개편을 통해 소비자 보호를 감독 업무의 핵심 과제로 전환하고, 민원·분쟁 과정에서 포착된 문제를 감독·검사와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금융상품 설계·제조 단계에서는 핵심 위험을 통제하도록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체계를 재정비하고, 고위험 공모펀드 집중심사와 보험상품 신고대상 확대 등 상품심사 절차도 강화했습니다.
 
민원·분쟁 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소비자 피해 등을 제도 개선으로 연계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총 94건을 환류했습니다. 민생금융범죄 대응도 주요 성과로 제시했습니다. 금융사기 정보공유·분석 인공지능(AI) 플랫폼 'ASAP'을 활용해 663억6000만원 규모의 피해를 예방하는 등 사후 구제에 앞서 피해 자체를 막는 체계를 강화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7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판매 관행 그대로…핵심 제도는 입법 대기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마라톤 풀코스에 빗대 현재까지 약 5㎞를 달려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이를 금융회사 영업 관행과 소비자 체감 변화로 이어가는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금감원도 금융상품 생애주기별 소비자 보호 체계를 마련했음에도 금융회사의 판매 유인 구조는 여전히 소비자 이익보다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은행권 ETF 신탁 판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금감원 조사 결과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ETF 신탁의 평균 보유 기간은 42일에 그쳤고, 동일인은 평균 5.5차례 계약을 반복했습니다. 전체 거래의 94.6%가 6개월 이내 단기 거래였지만 단기투자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선취수수료 방식이 91.7%를 차지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고 은행에 핵심성과지표(KPI) 개선 등을 요구한 데 이어 8~9월 주요 은행을 대상으로 현장검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수수료 체계와 KPI, 내부 판매 절차 등 판매 관행 전반은 은행권·협회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추가 개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전예방 체계를 구축했음에도 현장에서는 새로운 불완전판매 위험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소비자들이 충분히 내용을 고지받고 자발적으로 선택한 건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며 "금융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권유라고 볼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이익이 빨리 실현되다 보니 보유 기간이 짧아진 건지를 점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장 판매 관행을 바꾸기 위한 제도 보완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금감원은 상품 설계·제조 단계의 소비자보호 체계 구축을 주요 성과로 제시했지만, 이를 금융회사의 법적 의무로 명확히 정착시키는 작업은 남아 있습니다. 피해 발생 이후 소비자의 실질적인 구제력을 높이는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분쟁조정의 '편면적 구속력'입니다. 소비자가 일정 요건을 갖춘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이면 금융회사의 수락 여부와 관계없이 조정 결과에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금융회사와 소비자 사이의 정보·협상력 격차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다만 금융회사의 재판청구권 침해 가능성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실제 도입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금감원은 국회 입법을 지원하는 단계에 그쳐 분쟁조정의 실효성을 높일 핵심 장치는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민생금융범죄 대응 역시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나는 영역입니다. 금감원은 AI를 활용한 사기 탐지와 관계기관 협력을 통해 '선제 차단-수사·단속-피해 구제'로 이어지는 대응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반면 신종 피싱과 불법사금융 등 범죄 수법이 빠르게 진화하면서 현행 인력과 권한만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민생금융범죄 특사경 도입 등을 통해 전문인력과 법적 권한을 보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사체계 개편과 맞물려 관계기관 간 역할 조정과 법제화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수석부원장은 "민생 특사경에 관해선 현재 진행 중인 국가 수사 체계 개편 방향에 맞춰 실무선에서 준비 중"이라며 "그동안 특사경-검찰로 이어지던 체계를 중대범죄수사청 출범 후 어떻게 분담할지, 특사경 수사 처리 절차를 어떻게 가져갈지 등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늘어나는 민원·분쟁도 소비자 보호 정책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금감원이 인력을 확충하고 분쟁조정위원회를 정례화하면서 처리 역량을 높였지만, 민원·분쟁 접수는 지난해 3분기 3만4628건에서 4분기 3만6889건, 올해 1분기 3만8311건, 2분기 4만668건으로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금감원 내부의 처리 역량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금융사 단계에서 소비자 불만과 분쟁을 줄이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도 과제로 남았습니다. 이 원장은 "소비자가 금융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진정한 성과인 만큼 오늘 보고는 마침표가 아니라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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