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10월 14일 버지니아급 공격 잠수함 '하이먼 리코버'(SSN 795) 승조원들이 코네티컷주 그로턴에 위치한 뉴런던 해군 잠수함 기지에서 취역식을 진행하고 있다. SSN-795는 '핵잠수함의 아버지' 하이먼 리코버 제독을 기념하는 두 번째 미 해군 잠수함이다.(사진=미국 해군)
미국 원자력해군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이먼 리코버 제독이다. 그는 세계 최초의 핵추진잠수함 노틸러스함을 탄생시킨 주역이자 오늘날 미국 원자력해군의 기술·안전·인재 양성 체계를 확립한 인물이다. ‘핵해군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그래서 붙었다.
리코버는 1918년 미 해군에 들어가 1982년까지 복무했다. 햇수로는 64년에 걸치지만, 미국 자료에서는 통상 63년의 현역 복무로 기록한다. 미 해군 역사상 최장기 복무였다. 그러나 그의 군 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상관의 지시를 묵묵히 따르는 관리형 장교가 아니었다. 잘못된 결정에는 직설적으로 반대했고, 함정과 원자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타협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군 수뇌부와 끊임없이 충돌했다.
특히 그의 진급 과정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리코버는 해군 내 진급심사에서 두 차례나 장성 진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규정대로라면 대령으로 전역해야 했다. 그러나 의회가 움직였다. 상·하원 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리코버를 내보내면 미국의 핵잠수함 사업 자체가 흔들린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의회의 청문회와 강력한 문제 제기, 백악관과 해군장관의 개입을 거쳐 그는 1953년 소장으로 진급했다. 이후 1958년 중장, 1973년에는 대장에 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미 의회가 법률로 그의 전역을 '불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군이 그를 밀어내려 할 때마다 의회는 진급과 장기 복무를 뒷받침했다. 조직이 불편해하는 장교 한 사람보다 국가의 핵심 전략사업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코버는 결국 1982년 강제 전역할 때까지 해군 원자로국을 이끌었다. 미 해군 역사 자료와 미국 국립원자력과학역사박물관 자료도 그의 두 차례 진급 누락과 정부의 지원, 63년 복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이 그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임무를 맡긴 이유는 단순하다. 핵추진잠수함은 함정 한 척을 건조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자로 설계와 핵연료, 조선·기계·전기 기술, 승조원 교육, 안전규제, 정비시설과 군사작전 개념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야 하는 국가적 대사업이다. 정권이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책임자가 교체되면 기술적 일관성과 안전문화가 무너질 수 있다.
리코버에게는 이를 통합할 기술적 기반이 있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잠수함에서 근무했고, 컬럼비아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함정 전기체계와 원자로 기술, 조선소와 산업체 운영을 함께 이해했다. 1946년 오크리지에서 원자력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원자로를 잠수함에 탑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원자로가 너무 크고 위험하다며 반대했지만 그는 니미츠 제독과 해군장관, 원자력위원회와 의회를 설득했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기술지식만이 아니었다. 반대파를 설득하고, 필요하면 정면으로 싸우며, 결정된 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전투력이었다. 그는 원자로 설계에서 승조원 선발과 교육, 조선소 품질관리와 시운전까지 직접 챙겼다. 핵추진 함정 근무를 희망하는 장교들을 직접 면접했고, 직위나 배경보다 책임감과 판단력을 따졌다. 이러한 집요함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 해군 원자력 추진체계의 높은 안전성과 전문성의 토대가 됐다. 현재 미국 해군 원자력 추진체계도 설계·기술개발·연료관리·함대지원·교육훈련을 하나의 생애주기로 관리한다. 미 해군 원자력연구소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통합체계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사업에도 한국의 리코버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개별 기술이나 잠수함 건조 경험만이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외교·국방·원자력·조선·연료·안전규제·시험평가를 하나로 묶고,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총지휘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부처별 조직은 있어도 전체 사업의 일정과 위험을 책임지는 단일 지휘권자는 분명하지 않다.
예비역 잠수함사령관을 포함해 잠수함 운용과 건조, 전략과 정책을 두루 경험한 인물 가운데 적임자를 발굴해 중용해야 한다. 다만 잠수함 경력이나 계급만으로는 부족하다. 원자력 기술을 이해하고, 정부 부처와 국회·산업계를 설득하며, 국제협상과 안전 문제까지 통합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더 이상 진급이나 보직을 의식하지 않고, 여론의 일시적 변화에 휘둘리지 않으며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총지휘자를 중심으로 대통령실에 상설 사업조직을 두고 대통령이 직접 추진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총지휘자에게는 실질적인 인사·예산·조정 권한을 부여하되, 국회 보고와 독립적인 원자력 안전감독을 통해 견제해야 한다. 강력한 추진력과 엄격한 통제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리코버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바로 강한 권한만큼 무거운 책임을 지는 제도였다.
미 의회가 해군 수뇌부와 충돌하던 리코버를 오랫동안 지켜낸 것은 그가 편안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핵잠수함이라는 국가전략사업에는 정권과 인사를 뛰어넘는 일관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의 성패도 결국 같은 질문에 달려 있다.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것인가. 조직이 불편해하더라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세우고 지켜낼 수 있는가. 핵잠수함 건조에 앞서 우리가 먼저 건조해야 할 것은 흔들리지 않는 지휘체계와 책임의 리더십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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