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미국이 로봇을 국가안보를 좌우할 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가운데, 군사·치안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민 단속용 로봇 공급으로 내부 반발에 휩싸인 반면, LIG넥스원이 인수한 고스트로보틱스는 군사용 로봇 공급에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산업현장의 일꾼에서 국가안보의 수단으로 활동 반경을 넓힌 로봇이, 이제는 기술의 가능성뿐 아니라 활용의 경계와 책임까지 묻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각)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토안보·민방위 전시회 '밀리폴 카타르 2026'에서 4족보행 로봇이 이동하고 있다. 미국이 로봇을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산업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군사·치안 분야에서 로봇의 활용 범위와 제조사의 윤리적 책임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30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8일(현지시각) 로봇과 산업기계 및 관련 부품의 수입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교역국과 협상을 진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휴머노이드와 4족보행 로봇 등이 감시·정찰과 부상자 후송, 지뢰 탐지 등 군사적 임무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해외 공급망 의존이 미국의 산업 기반과 안보를 약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번 조치에 즉각적인 관세 부과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로봇의 안보 분야 활용이 주목받으면서 실제 치안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최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4족보행 로봇 ‘스팟’ 도입을 둘러싸고 내부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미국 공영라디오 WBUR 등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내믹스 직원 300여명은 ICE에 로봇을 공급하는 계약을 중단해 달라는 청원에 서명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배터리공장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이민당국의 단속 사건까지 거론하며 회사의 윤리적 원칙과 충돌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논란이 된 계약은 ICE가 미국 장비업체 라데코를 통해 스팟을 개조한 로봇 4대를 약 130만달러에 구매하는 내용입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ICE와 직접 계약한 것은 아니지만, 라데코와 정부 관련 사업에서 협력해 온 관계입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경영진은 직원들의 반발에도 계약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회사는 스팟을 무기로 사용하거나 사람과 동물을 해치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번 공급도 해당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회사는 고객이 로봇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보증을 무효화하거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종료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다른 로봇기업들과 함께 범용 로봇의 무기화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무기 장착 여부와 별개로 로봇이 감시·단속에 활용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섬의 보스턴다이내믹스 본사 앞에서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ICE에 공급된 스팟의 소프트웨어 사용 허가를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미국 노스이스턴대의 공학윤리 전문가 토머스 본 교수는 “ICE에 로봇을 공급하는 것이 윤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연구자는 공동체 구성원의 복지와 안전을 증진하고, 연구 성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할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LIG넥스원이 지난 2024년 인수한 미국 고스트로보틱스는 군사적 활용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고스트로보틱스의 4족보행 로봇 ‘비전60’은 군사시설 경계와 정찰 등 국방 분야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회사는 로봇의 무장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보다 정부의 법률과 정책에 따라 활용 범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개빈 케널리 고스트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동맹국 정부에 판매한 로봇이 무장된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로봇의 활용 범위는 개별 기업이 아닌 정부의 법률과 정책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고스트로보틱스는 지난 2022년 보스턴다이내믹스 등이 발표한 범용 로봇 무기화 반대 서한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이스라엘군에 대한 로봇 공급을 둘러싸고 미국에서 반전단체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졌지만, 군사용 로봇 공급 방침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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