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형주기자] 올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비준을 마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이르면 새해 2월 본격 발효에 들어갈 전망이다. 우리 경제의 지형을 근본부터 변화시킬 한미FTA는 산업의 판도도 뒤흔들 정도로 큰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국내 대표 기업들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한미FTA시대를 맞은 각 그룹사별 주력사업과 대표기업들의 전략을 몇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
국가 대표 산업에 속하는 전자·반도체 산업은 자동차와 함께 한미FTA의 최대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한미FTA 발효 후 15년간 전기전자(IT) 부문의 연평균 대미 수출 증가액이 1억61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자동차 업종(7억2200만달러)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다.
<자료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 IT산업, 한미FTA '즉효'는 없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IT산업의 수출 증가액은 3위인 섬유산업(1억500만달러)과 비슷한 수준인 데 반해, 1위 자동차 산업과는 격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2위간 수출 증가액 규모가 크게 차이난다는 얘기다.
이는 IT업종 내 주력 제품인 휴대폰과 반도체, 텔레비전(TV) 등이 FTA를 통한 수출관세 인하 혜택을 전혀 또는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함께 최대 수출 품목인 휴대폰 등 통신기기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 간 정보기술협정(ITA)으로 이미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다.
반도체와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완제품·부품 역시 대부분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TV는 한미FTA 발효시 기존에 5% 부과됐던 수출관세가 사라지는 효과가 있지만, 북미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는 현재 제품 대부분을 멕시코에서 생산해 판매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관세나 다름없다.
전자산업진흥회 관계자는 27일 "TV 등 가전제품의 경우 대부분 해외 현지 생산체제이고, 휴대폰이나 컴퓨터는 ITA 협정에 따라 이미 무관세로 거래된다"며 "가전과 정보기기를 합쳐 절반 이상의 제품군에 부과되는 관세가 없어 FTA 즉효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도 "단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다. 휴대폰 등 통신기기에는 이미 관세가 없고, TV도 멕시코에 생산기지가 있어 무관세"라며 "자동차처럼 큰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다.
◇ "장기 시너지 효과 무시못해"
하지만 미국 무역위원회(ITC)가 한미FTA 체결 후 자국산업의 대표 피해 업종으로 전자부문을 꼽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 국산 IT제품 이미지 제고 ▲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 등은 장기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한미FTA 효과인 데다, 미국이라는 대어(大漁)를 조속히 확보했다는 데서도 의미가 크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한미FTA 효과를 관세로만 국한하면 별 영향 없어 보이지만,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의 특성상 세계 최대 수요처로 꼽히는 미국시장을 일본·중국에 앞서 확보했다는 점은 상당히 큰 경제적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관세 인하 혜택이 자동차 산업 대비 적다고 해서 이를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거래에서 관세가 약간만 낮아져도 국내 IT산업이 입을 수혜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문돈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관세 인하폭이 낮아 큰 효과를 바랄 수 없다는 건 미국시장을 상대로는 적절치 않은 주장"이라며 "(미국이) 워낙 경쟁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이미 낮아진 관세가 조금 더 낮아지는 것만으로도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나 소비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 냉장고 등 생활가전 수출확대 전망
국산 IT제품의 대미 수출은 중국에 이어 2위로, 올해 예상 수출액은 총 1억8600만달러에 달한다. 이는 IT산업 총 수출 규모의 11.7% 비중이다.
전자업계에선 한미FTA를 통해 대형냉장고, 액정표시장치(LCD)·발광다이오드(LED) TV 등 가전제품의 대미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TV 가운데 프리미엄급으로 판매하는 제품과 냉장고 등은 국내에서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기 때문에, FTA에 따른 관세 철폐 혜택을 바로 누릴 수 있어 직접 수혜 대상이다.
산업연구원(KIET) 관계자는 "삼성·LG 등에서 생산하는 프리미엄 TV의 경우 미국에서 작게는 3.9%, 많게는 5%의 관세가 즉시 철폐될 것"이라며 "향후 국산 LCD·LED TV에 이어 입체(3D) TV도 현지시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미국에 수출하는 냉장고에 붙은 1.9%의 관세도 FTA 발효 후 바로 철폐된다"고 덧붙였다.
가령 미국에서 1526달러에 판매되는 국내 A사 프리미엄 냉장고의 경우 관세 철폐로 가격이 약 29달러 인하돼 로컬 브랜드의 동급(1603달러) 제품과 가격격차가 더 벌어진다.
이처럼 대형냉장고와 TV의 관세 철폐는 비록 자동차 대비 낮은 관세율이지만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미국시장에서 한국기업들의 시장경쟁력을 상당폭 향상시켜줄 것이란 관측이다.
IT분야의 품목 수가 워낙 많고, 제품별로 원산지를 소명해야 하는 원재료가 복잡 다양하다는 점은 한미FTA를 앞둔 당면 과제다.
따라서 한미FTA의 발효에 앞서 대미 수출 품목의 원산지 증명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교육·홍보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등 유관기관을 통해 전 수출 품목에 대한 원산지 증명 발급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중소 부품·장비기업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해도가 낮아 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KIET 관계자는 "FTA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수출 품목의 원산지 결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며 "원산지 증명 관련 교육·홍보활동을 정부기관과 협회가 추진해 업계 특성을 잘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해외 마케팅을 통해 IT제품 수출을 지원하고, FTA 전문인력을 구축하는 일도 필수다.
이에 따라 정부와 IT업계에선 FTA 유망품목에 대한 해외 전시회나 수출 상담회 등 각종 해외 마케팅을 통해 국내기업들이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업체 실무자를 대상으로 FTA 적용절차와 원산지 결정 기준 등 전문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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