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재벌개혁' 실종 조짐에 그룹사들 '방긋'
2012-04-02 14:29:37 2012-04-02 14:35:33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여야가 4·11 총선 화두로 설정했던 경제민주화 이슈가 눈에 띄게 잦아들면서 대기업들의 표정이 봄꽃처럼 화사해지고 있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앞다퉈 대책을 내놨던 '경제민주화' 문제는, 본격적인 총선전에 들어서며 터진 메가톤급 쟁점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에 이미 완전히 덮혔다. 야권은 야권대로, 여권은 여권대로 이 문제에 당력을 쏟아붓고 있는 상태다.
 
경제민주화 이슈는 이미 공천과정에서부터 사그라질 조짐이 나타나면서, 내부에서부터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부처를 비롯해 전경련, 대한상의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우군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긴장감의 고삐를 놓치는 않는 상황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새누리, 김종인 사퇴 계기 '방향 선회'?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새누리당은 당 정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으며 재벌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당내 신자유주의자들과 몇 차례 충돌이 있을 때마다 김 위원은 사퇴 배수진을 치고 개혁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손을 들어줄 박근혜 위원장의 애매모호함이 계속되면서 김 위원의 불만 수위는 높아졌고, 급기야 공천과정에서 계파 이해가 선행되면서 김 위원은 사퇴로 거취를 최종 정리했다. “당초 되지도 않을 일을 해보려 한 내가 잘못”이라는 말도 나왔다.
 
새누리당은 대신 시장질서 재편에 방점을 찍고 공정경제로 방향을 고쳐 잡았다. 대기업과 하도급 기업 간의 불공정 관행을 비롯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대기업의 중소기업 및 골목상권 영역 침해 등을 근절 대상으로 설정했다.
 
당초 검토됐던 출자총액제 부활은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됐다. 순환출자금지 등 직접적 규제는 공약에서 전면 제외됐다. 대기업에 대한 직접적 압박은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화답이었다.
 
◇‘의지’와 ‘전략’..혼선 빚는 민주
 
반면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재벌개혁의 칼날을 갈아왔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새 지도부 출범 직후 “재벌개혁으로 대표되는 경제민주화와 검찰개혁이 앞으로 민주당이 가야할 방향”이라고 천명했다.
 
출총제 부활을 비롯해 순환출자금지, 지주회사 규제 강화, 금산분리,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등 10대 정책과제를 내놓았다. 경제력 집중 완화, 불공정행위 엄단, 사회적 책임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재벌개혁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영입한 유종일 KDI 교수가 공천과정에서 배제되면서 의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냈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의 재벌개혁 정책은 재벌을 해체하거나 시장경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며 “한국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상생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초점은 놓지 않되 공정한 시장질서에 보다 주안점을 두겠다는 말로, 새누리당 정책 기조와 크게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이동걸 한림대 교수는 “현상유지 수준의 새누리당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다”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개혁적 인물의 공천은 명색만 유지할 정도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한 주요당직자는 “중도충의 표심 공략을 위해서는 좌우 균형도 살펴봐야 할 문제”라며 “전선을 넓히기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재벌로 비치기보다 정권심판론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부처·단체·대기업 ‘한목소리’
 
정치권이 한 발짝 발을 빼면서 주요 경제부처와 경제단체들의 반격도 활발해졌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11회 공정거래의 날 행사 기념식에서 “출총제 부활이나 순환출자금지 등은 현재 제기되는 대기업의 경영 행태 개선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직접 규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의 규모 확대 자체가 아니라 계열회사 일감 몰아주기로 부를 편법 증여하거나 중소기업 영역을 넘어 서민 생업에까지 무분별하게 침투하는 등 불합리한 경영 행태와 관련된 것”이라며 잘못된 경영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같은 날 최근 기업정책에 대한 경제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정치권의 대기업 규제 움직임을 반박했다. 설문에 응한 111명의 전문가들 중 62%가 대기업 정책이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잦은 정책 변경,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 과도한 기업 규제, 대·중소기업 간 편가르기 등의 순으로 기업정책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대기업 규제 강화가 중소기업 경쟁력에 도움 안 된다'는 응답(71%)과 '대기업 규제 강화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응답(80%)을 강조, 정치권 힘 빼기에 주력했다.
 
대한상의 측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출총제는 실효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 대다수의 얘기고, 순환출자금지는 기업 내부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건데 이 과정을 대체할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한 재벌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표명할 입장이 없다. 지켜볼 뿐”이라면서 “전경련이나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고, 우리 나름대로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해 면밀히 스크린하고는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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