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계약으로 몰아준 27조원 中企에 나눠줄까
공정위 ‘경쟁입찰 모범기준’ 강제성 없어 실효 의문
2012-03-29 16:04:16 2012-03-29 17:47:48
[뉴스토마토 이상원·손지연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들의 그룹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관행을 철폐하기 위해 경쟁입찰을 권고하는 모범기준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모범기준은 말 그대로 권장사항으로 법적 강제성을 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47개 대기업그룹 내부거래 규모 27조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계열사간 부당지원행위 금지, 비계열 독립기업에 대한 사업기회 개방, 거래대상 선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 등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거래상대방 선정에 관한 모범기준’을 마련해 47개 대기업 그룹의 채택을 권장키로 했다고 밝혔다.
 
모범기준은 내부거래가 집중되는 광고, 물류, 시스템통합(SI), 건설 등의 분야에서 경쟁입찰을 확대토록 하고, 수의계약을 할 경우 사유를 내부 구매지침에 구체적으로 규정토록  했다.
 
특히 일부 대규모 상장회사에만 있는 내부거래 감시조직인 ‘내부거래위원회’를 구성, 내부거래의 적정성과 계열사가 아닌 독립기업에 대한 직발주 가능성도 검토하도록 규정했다.
 
공정위가 내부거래에 칼을 빼 든 것은 대기업들의 내부거래 비중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0년말 기준 10대 민간 대기업그룹의 광고, SI, 물류, 건설분야에서의 내부거래 규모는 17조5000억원에 이르며, 이를 포함한 47개(상호출자제한 대상기업) 대기업그룹의 경우 내부거래 규모가 27조원에 달한다.
 
특히 계열사간 내부거래의 88%는 수의계약으로 진행돼, 독립기업에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 법적 강제성 없는 ‘권장사항’..공정위의 ‘희망사항’ 되나
 
막대한 거래물량을 계열기업에 몰아주는 관행이 근절돼야 한다는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이날 마련된 공정위의 모범기준으로는 관행근절이 쉽지 않아 보인다.
 
김동수 공정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지난 1월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 29일에는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두산의 10대 그룹대표들을 잇따라 만나 자율선언을 이끌어냈지만, 앞으로는 공정위가 장담한 47개 대기업 그룹으로의 확산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대기업 상장사에서만 운영하고 있는 내부거래위원회의 경우 3인 이상의 이사로 구성된 의결기구로 기구의 설치와 운영에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신영선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모범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47개 그룹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면서도 “내부거래위원회 설치와 (경쟁입찰 대상이 되는) 일정규모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반대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10대 그룹사로 간담회에도 참석한 현대중공업과 같은 경우에는 모범기준의 주요내용인 광고, SI, 물류, 건설 분야에는 계열사가 없어서 아얘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이날 발표한 자율선언에서 “경쟁입찰 분야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으로 경쟁입찰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모범기준의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점은 제도의 실효성 전망을 크게 떨어뜨린다.
 
김동수 위원장은 “모범기준은 법으로 제재하는 기준이 아니라 일종의 '권장'”이라며 “그러나 그동안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충분히 했고, 기업들이 원하는 내용을 충분히 기준에 담도록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켜질 것"으로 기대했다.
 
뉴스토마토 이상원 기자 lsw1996@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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