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회사와 주주들에게 수천억원대 손실을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60)에게 16일 징역 4년의 중형이 선고되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날 김 회장은 10대 기업 총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됐다.
김 회장에게 선고된 형은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은 이호진 전
태광(023160)그룹 회장과 비슷하다.
그래서 김 회장에 대한 법원의 이번 선고는 구형량이 높아도 재판부가 재벌가(家)에게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케 한다.
특히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SK와 금호석유화학, 하이마트, 태광 등 재벌기업들이 당혹감에 휩싸인 모습이다.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중형이 선고됐을 때부터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했다"며 "이런 분위기가 우리한테도 영향을 미칠까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재벌총수들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과 법원이 과거에 비해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한화와 우리는 내용이 전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선고가 나기 전까지는 휴가도 가지 않는다. 남은 재판 일정을 차분히 지켜보고 대책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최근 20년간 10대그룹 총수 7명 모두 '집유'
재벌닷컴에 따르면 1990년 이후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7명이 모두 22년6개월의 징역형 판결을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재판에서 이건희 회장은 1100억원대의 탈세와 배임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음에도 징역 3년과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2009년말 특별사면을 받았다.
앞서 2006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약 700억원의 횡령과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에도 불구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뒤 불과 73일만에 특별사면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SK(003600)그룹 최태원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000150)그룹 회장도 분식회계 등의 혐의가 인정됐지만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에게도 물론 특별사면이 뒤따랐다.
이처럼 '판박이 판결'이 반복해서 나온 것은 형법상 집행유예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에만 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재벌들은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에 이어 특별사면을 받는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양형기준 대폭 강화..1심 중인 SK·하이마트·금호석유 비상
수천억원에 달하는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의 공소사실에 대해 절반 정도가 무죄로 선고됐지만 징역 4년의 실형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한층 강화된 양형기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2012년 기업범죄에 대한 대법원 양형기준안에 따르면 횡령·배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인 경우 기본 4~7년, 가중 5~8년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특별 가중 요소로 '동종 누범, 지배권 강화나 기업 내 지위보전의 목적이 있는 경우'를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비슷한 상황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SK그룹 최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경우도 계열사 자금 497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만큼, 태광과 한화그룹에 대한 실형선고의 여파를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지난해 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각, 회사자금 횡령·배임 등의 혐의(특경가법상 배임·횡령 및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박찬구
금호석유(011780)화학 회장과 선종구
하이마트(071840) 회장의 경우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 회장은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비상장 계열사인 금호비앤피화학을 포함해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장부를 조작해 회사에 274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히는 등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횡령 또는 배임한 혐의로 현재 서울 남부지법에서 1심이 진행 중이다.
하이마트 인수·합병(M&A) 과정에서 3011억여원의 배임을 저지른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선 회장은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다음달부터 검찰과 변호인간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돼 적어도 올해 안에 판결이 선고될 전망이다.
◇기업인 범죄 '하한 징역7년 이상' 법개정 추진
또한 최근 정치권에서 기업인의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해 형량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법안을 추진 중이어서 1심 선고를 앞둔 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달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횡령과 배임액이 300억원 이상일 땐 무기 또는 15년 이상, 50억~300억원은 10년 이상, 5억~50억원은 7년 이상으로 명시했다. 재판 과정에서 감형되더라도 3년6월 이상의 징역형이 나오게 해 집행유예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재벌 총수들의 회사자산 등을 이용한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은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태광그룹의 이선애·이호진 모자(母子)에 대해 모두 실형이 선고된 것을 두고도 '가족을 동시에 처벌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깨질 것인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SK그룹 최 회장 형제에 대한 재판이 비슷한 사례로 SK그룹측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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