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결정적 증거' 누락..실수? 다른 의도?
특허전문가들 "소멸됐어도 매우 강력한 증거..이해 안된다"
2012-09-05 15:58:49 2012-09-05 18:35:40
[뉴스토마토 김기성·황민규·곽보연기자]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 침해 주장을 반박할 결정적 자료를 갖고 있었음에도 이를 제기치 않은 것은 여러모로 의문을 낳는다. (▶참조 삼성, 애플 특허 반박할 결정적 증거 '은폐'..왜?)
 
삼성은 결국 미국에서 진행된 본안소송에서 애플의 디자인과 사용자환경(UI) 등을 침해했다는 배심원 평결과 함께 1조2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배상금 지급을 명령 받았다. 루시 고 판사의 재량에 따라 액수는 3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애플은 이번 평결을 근거로 삼성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요청에 돌입하는 등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애플이 주장한 ‘카피캣’(모방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까지 더해지면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과정을 되짚어보면 이렇다.
 
삼성전자는 2006년 6월19일 국내 특허청에 휴대폰과 관련한 디자인특허(출원번호:3020060022880) 하나를 출원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디자인의 창작은 “LCD 화면을 대형화해 터치식 키패드를 적용하고 양 측면 및 저면을 감싸도록 띠 형상의 테두리를 형성해 심플하면서도 슬림한 이미지를 강조한 것을 창작내용의 요점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사진1 참조)
 
언뜻 설명만으로도 애플의 아이폰 또는 애플의 공세 빌미를 산 삼성의 갤럭시S와 매우 유사한 형태다. 애플은 이듬해인 2007년 1월9일 아이폰을 공개한 데 이어 같은 해 6월29일 미국에 아이폰을 출시했다.
 
선후 관계로 따지면 디자인에 있어서만큼은 삼성이 먼저 개발을 완료하고 특허까지 출원한 것이다. 디자인 창조인은 총 3명으로 이들 중 2명은 삼성전자 제품 디자인 부서에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출원된 특허는 1년여의 심사기간을 거쳐 2007년 5월10일 정식으로 특허 등록됐다.
 
그러나 삼성은 특허 연장에 필요한 등록료를 불납했고, 결국 2010년 5월 특허는 자동 소멸되면서 실효성과 효력을 잃었다. 삼성전자의 특허 등록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성우국제특허법률사무소 측도 관련 특허의 소멸에 대해 “등록료를 안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관련 특허가 이번 본안소송에서 미 법원에 증거 자료로조차 제출되지 않은 점이다. 이에 대해 국제 특허를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 및 변리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편에서는 관련 특허의 존재 유무조차 몰랐을 가능성부터 추후 제기될 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관측까지 다양하다.
 
한양특허법인의 관계자는 “특허권이 소멸됐다고 해도 법정에서는 분명 효력이 있다”며 “먼저 디자인을 개발했다는 명시적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특허권이) 소멸된 터라 특허권의 실효성을 주장할 수는 없지만 이번 미국 본안소송에서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반박 자료로는 충분히 효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늘특허법인 등 다른 특허법인의 변리사들도 같은 입장이었다. 한마디로 “미국 법정에서 충분히 이용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글로벌 업체 간 특허소송을 전담하는 한 국제변호사는 “(삼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관련 특허의 디자인 도면을 본 뒤에는 “애플 측 주장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증거 자료”라고 강조했다.
 
국내 한 제조업체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당시로선 삼성뿐만 아니라 LG전자, 팬택 등 국내 대형 제조사 모두가 디자인에 관해 중요성은 알지만 특허 필요성까지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며 “휴대폰 형태야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삼성이 관련 디자인을 애플보다 먼저 개발하고 특허까지 출원했음에도 실효성을 유지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6년 당시 특허청 디자인심사과에서 심사관으로 재직하며 삼성의 디자인 특허를 심의했던 한효석 상표3과 사무관은 “특허가 소멸된 것을 보니 (삼성에서) 필요 없다고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은 라이프 사이클이 매우 짧은 편이라 한 업체가 동시에 몇십종의 디자인 특허를 일단 출원하고 본다”며 “그리고 나서 쓸모가 있다면 유지시키고 아니면 버린다. 스마트폰이 출현하면서 나타난 특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런 내용이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자 “(문제가 되고 있는) 특허의 존재 를 알고 있었다”며 “F700이라는 확실한 반박 증거가 있어 여기에 집중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관련 특허는 미출시 제품인 반면 F700은 다르다. 출시까지 된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007년 5월에야 관련 특허가 정식으로 등록됐고, 이전에 아이폰이 공개됐기 때문에 법무팀은 (반박 근거로서) 큰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은폐라기보다는 고의적으로 간과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F700의 도면과 출시제품 등을 살펴볼 때 애플의 아이폰 또는 갤럭시S와 유사한 형태의 디자인은 소멸된 이전 특허와 관계가 깊다.(사진2 참조) 또 삼성전자에서는 보도 이후에야 관련 특허의 존재를 알았다는 관계자들이 적질 않다. 특허를 전담하고 있는 지적재산권(IP) 부서와 이번 특허소송을 준비한 법무팀이 곤혹스런 처지로 내몰렸다는 얘기들도 흘러나온다.
 
한편 삼성전자가 이번 본안소송에서 주요 반박자료로 제시한 F700의 디자인 특허 또한 같은 이유(등록료 불납)로 2010년 1월17일 자동 소멸된 것으로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확인됐다. 결국 디자인 특허와 이에 따른 지적재산권을 경시한 우리 업계의 풍토가 부메랑이 돼 삼성을 덮친 것으로 보인다.
 
◇(사진1)지난 2006년 삼성전자가 특허청에 출원한 디자인 특허 도면. 해당 특허권은 2010년 5월을 기점으로 등록료 불납의 이유로 자동 소멸됐다.
  
◇(사진2)F700 디자인 특허 도면도와 삼성전자의 관련 제품. 이 역시 등록료 불납을 이유로 2010년 1월 특허권이 자동 소멸됐다.
◇(사진3)애플의 아이폰3와 삼성전자의 갤럭시S. 사진1의 디자인 도면과 매우 흡사하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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