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지명기자]
"퇴직연금 사업자 대부분이 적자입니다. 자격증만 있고 체결실적이 전혀 없는 곳도 손에 꼽힙니다."
최근 전체 50여개 사업자 중 34위인 메리츠화재가 퇴직연금 사업에서 전격 철수 방침을 밝혔다.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가기에는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사업 포기 속출..과당 경쟁 부작용 심각
비단 메리츠화재 만의 문제는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사업을 하고 있는 사업자 가운데 점유율이 0.1%도 안 되는 사업자가 12개사에 이르고 이 가운데 단 한 건의 계약실적이 없는 곳도 6개사에 달한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업계에서는 대형은행 등 상위사 몇 개 정도만 퇴직연금 사업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이 되면 중소형사들 위주로 퇴직연금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더 나올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장미빛 환상을 갖고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어 시스템을 깔고 인력을 수용하고 부서도 크게 만들고 법인명까지 바꾼 사례도 있었다"며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큰 수익은 나지 않고 유지비는 높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푸념했다.
규모 대비 사업자가 많다 보니 꺾기(은행이 대출을 조건으로 자사의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불건전 영업 행위), 계열사 몰아주기, 과다 출혈경쟁 등으로 시장이 혼탁해졌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형사들은 규모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
때문에 퇴직연금 시장이 상위사를 위주로 재편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당장 수익이 나는 구조도 아닌데 전산구축과 인력비용 등을 고려할 때 사업을 계속 유지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일 것"이라며 "시장경쟁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리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승 추세 꺾일 것"
퇴직연금은 성숙단계를 넘어 정체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까지 매년 2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지만 내년엔 크게 둔화될 전망이다.
특히 500인 이상 대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77.9%로 대규모 신규계약에 의한 퇴직연금의 고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80%에 달하는 30인 이하 나머지 사업자들에게 기대를 걸어봐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사업자들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얼마나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홈페이지
기존 퇴직보험의 퇴직연금 전환 물량도 거의 다 소진됐다.
김치완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기업의 퇴직연금 도입과 퇴직보험의 퇴직연금 전환 물량이 거의 다 소진됐다"며 "퇴직연금 성장세는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외 경기 침체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또 다른 역마진 상황에 직면한 점도 부담이다.
경쟁격화로 과다한 금리 제공, 지나친 수수료 인하로 인하 1차 역마진과 금융시장 악화로 시중금리가 하락함에 따라 저금리 역마진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확정기여형(DC) 경우 수익률이 저조하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은 이제 성숙단계를 넘어섰고 상승추세가 꺾일 수밖에 없다"며 "경제 상황이 저금리 기조로 가다보니 수익률이 높지 않고 DC형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퇴직연금이 뭐야?"
지난 7년간의 퇴직연금 적립금액과 가입률을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법정 퇴직금 제도에서 퇴직연금으로 전환이 많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퇴직금제도로 유지하는 사업장이 많다.
또 지난해 기준으로 퇴직연금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적립금 비중이 3.5%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은퇴 이전 평균소득 대비 연금 지급률)역시 12.5%에 그친다.
퇴직연금의 기금적 성격과 노후보장적 기능 모두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평가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개정 등으로 제도는 많이 개선됐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정부의 홍보 부족으로 인해 근로자들의 관심도가 크게 낮은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들 조차 자신이 가입한 상품이 무엇인 지, 그 상품이 잘 운용되고 있는 지, 얼마나 투자되어 있는 지 관심있게 살펴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0명중 8~9명 정도가 ‘401K’라는 퇴직연금 플랜에 가입한 미국 근로자들이 자산운용에 적극적인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일찍 연금을 민영화한 칠레등 남미국가 근로자들은 하루하루 자신이 가입한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입 상품의 수익에 따라 은퇴후 받을 수 있는 노후 자금의 규모가 달라지고 퇴직연금이 노후의 보루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감독체계가 아직 허술한 것도 큰 문제다. 영국 등 해외의 경우 퇴직연금 감독청이 기업이 퇴직연금을 어느 정도 적립하고 있는지 확인검증하고 있다.
류 선임연구원은 "4인이하 사업장에 대한 별도의 단순화된 제도를 만들어 가입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퇴직연금의 관리·감독을 위한 별도의 감독체계가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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