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국민과 경제계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뛸 수 있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2011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33대 회장으로 선출된 허창수 GS그룹 회장(사진)이 취임사에서 “기적의 50년을 넘어 희망의 100년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면서 밝힌 포부다.
허 회장 취임 당시 재계는 큰 기대감을 가졌다. 포용력과 조화로운 성격을 겸비해 흩어져 있던 회장단을 응집하는 데 적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모처럼 10대 그룹사 내에서 재계의 대변자가 탄생한 점도 재계가 한목소리로 반긴 이유로 꼽힌다. 전경련 회장직은 지난 1999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이후 12년 간 주요 그룹 총수들이 한사코 자리를 고사해왔다.
높은 기대감 속에 출범한 허창수호가 내달 취임 2년을 맞는다. 재계에서는 역대 회장들이 대부분 연임해왔던 전례를 들면서 허 회장의 연임을 유력하게 전망하고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2년 가장 큰 문제는 ‘소통 부재’
지난 2년간 가장 크게 지적받는 부분은 기업과 국민과의 소통 부재다. 전경련은 기업집단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동시에 기업과 국민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전경련의 목소리가 소수 대기업에 집중된 탓에 기업집단과 국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자니 국민들의 시선이 차갑고, 국민을 의식하자니 대기업이 뭇매를 맞는 상황이 종종 연출된 탓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경련 회장직을 맡게 된 허 회장은 이러한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취임사를 통해 "국민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겠습니다.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누구의 의견이라도 경청하겠습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경련 최대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소통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다짐은 불과 한 달 만에 공염불이 되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허 회장이 취임할 당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뜨거운 사회적 화두였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여론과 정부를 등에 업고 재계를 압박하자 대기업은 그야말로 수세에 몰린 상황이었다.
이에 경제계의 맏형격인 대한상공회의소는 손경식 회장이 이익공유제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 정운찬 위원장과 만남을 가지며 서로의 뜻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동반위를 자극하기보다 소통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 것이다.
이와 달리 허 회장은 정 위원장과의 만남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비쳤다. 정 위원장이 손 회장과의 만남 직후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고 공개발언을 한 때문이다.
동반성장 논의가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견제를 요구한 국민적, 시대적 요구에서 촉발된 점을 감안했다면 일찌감치 대화의 장에 나섰어야 한다는 지적이 터져나왔다.
그렇다고 기업들과도 소통이 원할했던 것도 아니다. 취임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번에는 사회공헌재단 설립 문제를 놓고 회원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전경련이 주요 대기업의 사회공헌 담당 임원들을 불러 사회공헌재단을 만들겠다고 나섰 때문이다.
20개 그룹이 매년 1000억원을 모아 10년 동안 1조원을 마련하는 안을 강행했다가 회원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허 회장 취임 직후 곳곳에서 소통에 미숙한 모습을 확인한 재계와 국민은 '역시나'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 낮은 출석률..리더십 부재
허 회장 취임 2년, 또 다른 아킬레스건은 바로 전경련 회장단 회의의 낮은 출석률이다. 허 회장이 전경련으로 추대될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회원사들의 약화된 결속력을 다져줄 것으로 관측했다. 포용력과 합리성 등 허 회장의 성격이 장점으로 꼽혔다.
더구나 지난 1999년 김우중 회장 이후 12년 만에 모처럼 재계 순위 7위 그룹에서 회장이 배출된 것도 재계의 기대감을 키웠다. 전경련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만큼 회원사들의 교류도 더욱 활발해질 걸로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허 회장이 취임한 직후 9번 열린 회장단 회의의 평균 출석률은 47.62%인 것으로 나타났다. 회장단 10명 가운데 과반인 5명도 모이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취임 첫해인 2011년의 경우 3월 정기 회장단 회의에서 81%의 출석률을 기록, 첫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출석률은 뚝뚝 떨어졌다. 그해 5월 61.9%, 9월 57.1%, 11월 38.1%였다. 이듬해인 2012년은 1월 38.1%, 3월 38.1%, 5월 47.6%, 9월 38.1%, 11월 28.6%으로 갈수록 참여가 부진했다.
출석 여부가 곧 회장단 회의에 대한 관심의 척도임을 감안하면, 리더십이 부재하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전략과 비전 제시 부재
전경련의 전략과 향후를 대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허 회장은 재임기간 내내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감세와 법인세 인하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특히 경제위기를 강조하며 '규제완화로 인한 일자리 창출, 투자 확대' 주장은 단골 메뉴였다. 기존의 논리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여론이 좋을리 없었다. 오로지 대기업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아울러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싱크탱크로서 제 기능을 하도록 지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2011년 한경연 인력 40여명 가운데 30% 가량 구조조정을 진행하며 재계 안팎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에 전경련은 지난해 최병일 원장을 영입하며 보수의 싱크탱크로 성장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재계의 입장을 일관되게 대변하는 연구기관에 불과하다는 종전의 평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잦은 말실수..자질 논란
아울러 허 회장의 잦은 말실수는 자질 논란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취임 첫해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수차례 곤욕을 치르며 정치권으로부터 집중난타를 당했다.
허 회장은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반값등록금과 같은 정책들은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당장 듣기는 좋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며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고 있는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는 재계 의견을 제대로 내겠다"고 말해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정치권과 국민의 높은 관심사안이었던 반값등록금에 대해 현안과 무관한 전경련의 수장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아울러 포퓰리즘 발언으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로부터 대·중소기업 상생 공청회에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는 등 호된 신고식을 치른 뒤엔 정부 정책에 반하는 발언을 내놓았다가 질타를 받기도 했다.
허 회장은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오늘날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함에 있어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취임 첫해 갖은 설화로 수차례 논란에 휩싸이자 이듬해에는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허 회장의 발언으로 인해 전경련은 국민 정서와 동떨진 대기업집단이라는 주홍글씨만 깊이 새겨진 꼴이 됐다.
정운찬 위원장은 동반성장위원장직을 던지며 전경련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재벌 옹호에만 급급” VS "누가 되더라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허창수 회장을 보는 재계 안팎의 평가는 어떨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허 회장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으로 진단했다. 허 회장 역시 역대 회장들과 마찬가지로 소수 재벌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데만 급급했다고 평했다. 특히 경제민주화 관련해 경제위기를 강조하며 대안 없이 반대로 일관한 것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 국장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적극 나섰어야 했는데, 허 회장은 이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면서 "소수의 이익만 대변하며, 전경련과 회장의 존재의 의미를 반문케 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반해 재계에서는 허 회장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도 크지만,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은 처지도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을 당시 여타 대그룹 총수들이 모두 고사한 데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장직을 수락한 배경은 이해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주요그룹 고위 임원은 "현 전경련 구조로서는 누가 회장이 돼 이끌어도 어렵다. 10대 그룹이 참여하지 않는 전경련 목소리에 무슨 힘이 실리겠나. 다들 각자도생하고 있다"면서 "각 기업들이 부담감에 대외적으로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창구 역할로서 전경련이 존재해야 하며, 이것이 목적이자 이유다. 허 회장이 여러 지적도 받았지만 한계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그룹사 임원 역시 "재계의 맏형 격인 삼성이나 현대차 회장이 목소리를 내는 것과 GS 그룹 회장의 발언권은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느냐"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무턱대고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비겁한 비판"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을 비판하기 전에 침묵 속에 눈치를 살피고 있는 주요 그룹들 총수부터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이어 "전경련은 재계의 대표조직으로서 역할과 기대에 대한 요구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경제민주화 등 수세적인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전경련 회장 한 사람에 기댈 게 아니라 재계가 공통으로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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