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식기자] “올해는 딱히 인터넷업계 전반적으로 호재가 보이지 않는다. 투자환경은 지난해보다 더 좋지 않을 것 같다”, “투자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어차피 자본금 3000만원이나 3억원이나 다 똑같다. 오히려 투자가 잠재력을 억누를 수 있다”, “사업을 너무 고상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기자의 질문에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이하 FTA) 대표는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답변을 이어나갔다. “국내에서도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가 나올 수 있다”는 식의 막연한 희망 메시지를 늘어놓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가 기업가가 아닌 투자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벤처키드로서 박 대표의 위상은 그 어떤 청년 창업자 못지않다. 벤처캐피탈 ‘스톤브릿지캐피탈’에서 심사역을 맡으며 티켓몬스터, 우아한형제들, 엔써즈 등 이른바 ‘잘 나간다’는 인터넷 벤처기업에 투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지금은 대부분 성공사례로 거론되지만 당시 결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시장에 대한 무지와 고위험을 이유로 많은 이들이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가시적 실적지표와 함께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해외 투자사에게 기회를 뺏긴다”며 회사를 설득했고, 결국 뜻을 관철시켰다.
현재는 인터넷업계 전문 투자자로서 커리어를 잇고 싶은 마음에 스톤브릿지캐피탈에서 나와 벤처 신생기업(스타트업)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업체 FTA 대표로 있다. 최근 2~3년치에 해당하는 운영자금을 투자받고, 자회사 상당수가 손익분기점에 임박하는 등 사업은 순항하고 있는 상황.
지난 12일 그와 만나 2013년 인터넷업계 벤처투자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올해 인터넷업계 벤처투자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 같나.
▲ 단순하다. 원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올해도 그럴 것 같다. 매년 국내 벤처캐피탈이 투자하는 금액을 1조원으로 본다면 95%는 바로 매출을 내는 제조업 하청업체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 3년간 2010년 소셜커머스, 2011년 모바일 메신저, 2012년 모바일게임 등 해마다 큰 바람이 있었는데 올해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 지난해 5월 한 포럼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개발자 능력이 훨씬 좋아졌다는 점, 인터넷 이용자가 대폭 늘었다는 점, 예전 성공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인터넷업계 벤처창업이 유망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배치되는 것 아닌가.
▲ 국내 투자자 관점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시류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회를 발굴한다면 그 관점은 동일하다.
- 제3의 주식시장이라 불리는 코넥스를 어떻게 보나. 상장 기준이 많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은 커도 당장 수익화가 어려운 인터넷기업에 호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프리보드(비상장 중소기업 주식시장)’ 등 비슷한 게 나왔지만 실패한 사례도 있고, 여러 모로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정부 주도의 제도화보다는 민간에서 투자가 활성화되는 게 시급하다.
- 하지만 여전히 공개시장 인터넷업종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모바일 등 이른바 재료가 많고 실제 반응도 많이 이뤄진다. 일반 벤처기업과 비교할 수 없지 않을까.
▲ 코넥스가 공개시장으로 발전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공개시장과 민간시장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고 융통성 있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움직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양쪽 투자성향도 다르고, 서로 격리돼 있다고 본다.
-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은 없나.
▲ 물론 있다. 국내 투자자는 여전히 보수적이지만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시장에 관심이 많다. 우선 발달된 이커머스 환경과 빠른 스마트폰 보급 등 IT인프라와 예상보다 큰 시장 규모에 놀라워한다. 이들이 국내 투자자보다 인터넷산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고, 금융에 대한 전문성도 탄탄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 또다른 요인은.
▲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점차 벤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는 점도 희망적이다. 한국 젊은이들은 문화적, 사회적 이유로 대기업에만 갈려고 한다. 자본금 5000만원 갖고 창업하기에는 너무 큰 리스크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재무적 부담이 없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이들에게 ‘고수익·고위험’보다는 ‘저수익·저위험’이라도 안겨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 그렇다면 페이스북과 같이 거대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창업에 회의적인 입장인가.
▲ 그렇진 않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바라는 일이고, 긍정의 이야기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벤처캐피탈은 LP(유한책임투자자)의 돈으로 투자하는 것이며, 보상에 대한 기대가 있다. 즉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손익분기점 달성 등 성공스토리를 조금씩 쌓아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플랫폼 탄생은 투자자들의 인내를 필요로 하며, 투자자들의 인내는 성공사례가 있어야 이뤄진다.
- FTA가 관심을 갖는 사업 분야는 무엇인가.
▲ 꾸준히 두 부문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 먼저 첫번째는 오프라인 시장을 부분적으로 온라인화 하는 작업이다. 흔히 서비스·재화가 유통되기까지 수많은 비효율과 정보 비대칭이 이뤄진다. 이를 개선함으로써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당장 매출이 나오기 때문에 손익분기점 도달이 쉽다.
두번째는 이커머스 영역이다. 지난 십수년간 전자상거래 시장을 지마켓, 옥션이 장악한 가운데 아기용품 등 특정 분야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상대적으로 수익성 확보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잘 공략한다면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 이밖에 눈여겨보는 다른 분야는 없나.
▲ 기업간 거래(B2B) 시장에 대한 관심이 예상 외로 크지 않다. 소비자와 판매자를 연결시켜주는 모델은 많아도 소매상과 도매상을 연결해주는 모델은 부재하다. 하지만 동대문처럼 몇몇 영역에서는 기회가 있다고 본다. 아울러 이커머스에서 파생사업을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예컨대 오프라인 매장을 위한 판매분석툴이나 업무지원서비스를 만든다면 괜찮을 것 같다.
- 투자자로서 자금수혈을 희망하는 창업자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 사실 자본금 3000만원이나 3억원이나 운신의 폭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투자는 잠재력을 억누를 수도 있다. 왜냐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돈이 없어서 못해”라고 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투자금 절반은 시행착오 비용으로 나간다. 투자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는 게 좋다고 본다.
- 벤처투자 관련, 사회풍토나 정부정책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 투자자들은 서비스정신을 가져야 한다. 말로는 창업자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갑을관계를 유지한다. 사실 창업자가 성과를 내야 투자자들도 돈을 번다. 진정한 갑은 창업자라고 봐야 한다.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하고 있다고 본다. 대신 직접지원보다는 간접지원 비중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민간이 시장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벤처지원책이 통일되지 못하고 여러 부처에서 나오다보니 일관성이 없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 하나로 정리됐으면 좋겠다.
얼핏 보면 투자자로서 창업자들이 듣기에 썩 달갑지 않은 말을 전했지만 그 역시 기업가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성공사례를 발판 삼아 큰 회사로 가고 싶지 않냐는 말에 “만약 그랬다면 애초 창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여타 창업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박 대표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돼 불안하다”면서도 “자신의 꿈에 더 다가가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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