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손놓은 가격표시제..상인 "현실 모르는 탁상행정"
2013-03-25 16:01:12 2013-03-25 16:03:53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에 위치한 한 정육점. 가게 유리창에는 밖에서도 고기값을 알 수 있게 가격을 표시한 종이들이 여기저기 붙었다. 정육점 주인 송모(52)씨는 "정부가 올해부터 가게 밖에도 가격을 표시하래서 한 것"이라며 "이것 때문에 가게 외관만 흉해졌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시행 중인 가격 표시제가 상인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주무 부처가 복지부에서 식약처로 넘어간 이후 실무자들은 업무를 떠넘기기만 하고 있어 탁상 정책이 될 우려까지 낳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식품위생법 시행령·규칙'을 개정해 올해 1월부터 모든 영업소는 소비자가 상품의 최종 가격을 알 수 있도록 가게 내부·외부에 가격을 표시하도록 의무화 했다.  
 
또 현재 '근'이나 '인분(人分)' 단위로 판매되는 고깃값도 '100g' 단위로 표시하도록 통일시켰다.
 
◇가격 표시제 제대로 홍보 안돼.. 상인들 우왕좌왕
 
하지만 25일 공덕시장과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 등을 돌아본 결과 가격 표시제를 제대로 지키는 업소는 많지 않았다. 옥외에 가격을 표시해도 여전히 '근' 단위를 쓰는 등 같은 시장인데도 준수 여부가 천차만별이었다.
 
상인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정부가 영세 상인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고, 제도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았다는 점.
 
신원시장 인근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조모(36)씨는 "올해부터 가격표시제를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손님 받기도 바쁜데 메뉴판과 전단지까지 바꾸라니 과연 현실성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덕시장의 송씨 역시 "내가 정육점만 십수년인데 가게 밖에 고깃값 안 써놨다고 불평인 손님은 지금껏 한명도 없었다"며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제도냐"고 비판했다.
 
◇복지부와 식약처간 떠넘기기..정부도 손 놔?
 
복지부는 소비자의 합리적인 구매와 판단을 돕겠다며 가격 표시제 도입 취지를 설명했지만 석달이 넘도록 제도 정착을 위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격 표시제 정착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행정지도와 교육을 하도록 했다"며 "그러나 제도가 얼마나 정착됐고 준수되는지에 대한 통계와 실태조사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새정부 출범후 식품정책 총괄 부서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전하면서 복지부는 가격 표시제가 식약처 담당이라고 발을 빼고, 식약처는 복지부에 먼저 문의하라며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당장  업무파악이 안 돼 가격 표시제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며 "정확한 답변은 며칠 뒤에야 할 수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따라 애꿎은 영세 상인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는 지적이다.
 
전국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옥외 가격표시와 메뉴판 변경에 따른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이냐"며 "책상에 앉아서 제도만 뚝딱 만들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데 이게 자영업자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공덕시장 상인인 이모(49)씨는 "나는 상인이기도 하지만 소비자기도 하기 때문에 물건 사는 입장에서는 가격 표시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매일 싯가가 달라지는 횟집이나 가격체계가 다양한 미용실 같은 곳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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