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지키기 컨트롤타워' 결국 국정원에 있었나?
박원순 서울시장 4년 전 '국정원 불법활동' 언급 주목
이명박 정권 동안 '시민단체 활동 개입·압력 의혹' 제기돼
2013-05-09 10:14:56 2013-05-09 10:17:4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4년 전 국정원을 겨냥해 한 언급이 다시금 주목된다. 
 
박 시장은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이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던 2009년 6월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가 지역홍보센터 만드는 사업을 3년에 걸쳐 하기로 행정안전부와 계약했지만 1년 만에 해약통보를 받았다. 하나은행과는 마이크로 크레딧 같은 소기업 후원사업을 같이 하기로 합의하고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무산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정원에서 개입했다고 한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박원순 시장 "총체적 지휘세력 있다"
 
박 시장은 또 "지금 시민단체는 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의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통에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태다.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곳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즉시 박 시장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허위 사실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고심까지 가는 법정다툼 끝에 대법원은 박 시장의 손을 들어줬다. 
 
1, 2심 재판부는 "피고의 언론제보 행위는 피고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거나 국가기관의 업무처리의 공정성 여부에 관한 감시와 비판기능의 중요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으로서 그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이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국정원이 기업에 시민단체 후원 내역 자료 요구"
 
박 시장은 또 국정원 조정관이 서울시 고위간부에게 전화해 환경재단이 주최한 환경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지급을 보류시켰다거나 또는 대기업 대외협력담당 간부에게 시민단체 후원 내역자료를 요청하는 등 시민단체의 사업에 대한 국정원 개입 의혹을 여러 경로를 통해 수차례 접했다. 
 
법원도 이 사실에 대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박 시장의 '국정원 개입 의혹' 언론제보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실 국정원의 시민단체 동향 감시나 보고 또는 개입 의혹은 지난 이명박 정권 동안 이미 여러 시민단체들에게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 
 
특히 이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그의 정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개인이나 기업, 단체는 국정원의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았다는 의혹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복수의 시민단체 관련자들은 "공익적 차원의 재정지원이나 사업제휴를 맺었던 기업이나 단체가 돌연 태도를 바꿨다"며 "그때마다 국정원쪽 인사들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30일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 검찰 소환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개중에는 국정원의 직·간접적 사찰이나 압력 의혹을 제기하며 이같은 사실을 언론을 통해 거론한 사람도 있었으나 국정원은 그때마다 '입막음용 소송'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인 김미화씨나 김제동씨가 그런 경우다. 이 때문에 국정원을 둔 의혹은 '소문' 수준에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MB 국정원'에 대한 이런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정황이 최근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우선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3월18일 폭로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라는 문건이 그렇다. 
 
진 의원이 공개한 이 문건에는 "종북세력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선전선동하며 국정운영을 방해, 좌시해서는 안 된다", "종북 세력들은 사이버 상에서 국정 폄훼 활동을 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건에서 언급된 '종북세력'은 민주노총, 전교조, 4대강범대위 대표자들로, 원세훈 전 원장이 이들과 단체를 종북세력으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세훈 前원장 "국정원이 앞장서 대통령님 진의 적극 홍보"
 
또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이들에 대해 "정공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으며 (국정)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는 문구도 있다.
 
국가안보 수호와 국익증진의 사명을 부여받은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훈(院訓)에 걸맞지 않게 대통령의 치적만을 옹위하는 이른바 'MB 옹위 조직'으로 활동했다는 정황으로 풀이되는 부분이다.
 
특히 최근 정치개입 등에 의한 국정원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런 활동은 상시 업무로 이뤄졌다고 한다.
 
원 전 원장이 이 대통령 취임한 지 1년 뒤 국정원장으로 임명돼 지난 3월까지 재직했으니 4년간 이런 활동이 원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을 통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단체들이나 재야에서는 국정원 외에 다른 조직도 이 전 대통령을 위한 'MB 옹위 조직' 활동을 해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민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시장이 2009년 6월 언급한 '총체적으로 지휘세력', 소위 'MB옹위 컨트롤타워'는 국정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며 "경찰이나 검찰, 국무총리실 등도 개입됐다는 의혹이 상당히 신빙성 있게 제기됐다"고 말했다.
 
◇'국정원·총리실 등 모여 TF 구성' 의혹도
 
그는 또 "이들이 서로 기관간의 유기적인 협조를 넘어 각 부처 소속 인사들이 모여 TF팀을 만든 다음 이 대통령의 정책에 반기를 들거나 비판하는 소위 종북세력, 좌파단체에 대한 감시와 사찰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0년 이런 의혹에 대한 신빙성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국무총리실이었다. 이 조직은 개인은 물론 여야 의원 등 이 대통령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이면 범위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풍자한 '쥐코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김종익 당시 KB한마음 대표를 불법 사찰했다. 이어 대통령 비방 동영상을 유포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김씨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으나 '내사종결'되자 공금횡령혐의를 더해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수사결과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
 
유야무야 끝날 것 같던 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사건은 그러나 2010년 신건·이성남 민주당 의원의 의혹 제기로 수면위로 다시 떠올랐다. 곧바로 검찰이 '민간인 불법사찰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으나 이인규 당시 공직윤리지원관과 김충곤 전 점검1팀장, 원충연 조사관을 기소하는 선에서 끝났다.
 
2012년 3월.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자료 인멸지시를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했다는 폭로가 지원관실 장진수 주무관을 통해 터져 나오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치부가 다시 드러났다.
 
◇'불법사찰' 공직윤리지원관실 "VIP에 일심 충성"
 
검찰의 2차 수사 당시에는 지원관실 구성원들이 비선문건인 일명 'VIP(이 대통령)에 대해 일심(一心)으로 충성' 문건을 만들어 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의지를 다진 것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이른바 'MB옹위 컨트롤타워'가 국정원이 아닌 총리실에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러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공직윤리지원관실 핵심인사들이 연이어 법정에 서면서 이 같은 의혹은 사그라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명박 정권 말기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원 전 국정원장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았고, 국정원은 역사상 두 번째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조순형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최근 이런 사태에 대해 '국정원의 수모'라고 개탄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처음 수사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8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는 수사과정에서 경찰 윗선의 사건 축소·은폐 압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명박 정권 동안 'MB 옹위 조직'으로 지목됐던 경찰 역시 수사선상에 오른 것이다.
 
◇검찰도 자유로울 수 없어
 
검찰도 'MB 옹위 조직'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불법매입 의혹' 사건에 대한 부실수사로 특별검사가 투입되고 그 결과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당시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에 관여했던 청와대 인사들이 줄줄이 기소되면서 '이 대통령 봐주기 수사'로 사실상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검란(檢亂) 사태'라는 초유의 격랑 속을 사력을 다해 뚫고 나온 검찰이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서 얼마나 많은 진실을 찾아낼 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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