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국제 성추행사건과 관련, 이남기 홍보수석이 귀국을 지시했다는 윤 전 대변인의 주장이 나오면서 이번 사건의 불똥이 청와대로 튀었다.
윤 전 대변인의 주장대로라면 직속상관인 이 수석의 지시를 받고 귀국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성추행 사건 용의자로 미국 워싱턴DC 경찰 수사의 대상이 된 윤 전 대변인을 이 수석이 은닉한 셈이 된다.
귀국 지시가 이 수석의 단독 판단이 아닌 청와대의 보고절차를 거쳐 내려왔다면 이 수석은 물론 청와대도 범인은닉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나 법조인들과 국제법 학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 당시 윤 전 대변인의 신분이 무엇이었는지가 이 사건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견해다.
윤 전 대변인이 특별외교사절에 포함되어 있다면 면책특권을 보유한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외교부 "윤 전 대변인은 외교사절 아니다"
13일 외교부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의 미국 순방시 공식 자격은 ‘실무수행원’으로 확인됐다. 관용 여권을 소지한 공무 출장자 신분으로, 윤 전 대변인은 특별외교사절이 아니어서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없다. 외교부 관계자는 윤 전 대변인에 대해 “외교사절이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그렇다면 윤 전 대변인의 워싱턴DC에서의 성추행 행위는 명백한 범죄행위로, 용의자로서 수사대상이 됨은 분명하다. 아울러 윤 전 대변인의 주장대로 이 수석이 귀국을 지시했다면 이 수석의 범인은닉 여부가 쟁점이 된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워싱턴DC에서의 성추행사건 경위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이날 윤 전 대변인은 이남기 홍보수석의 지시로 귀국했다고 밝혀 파장을 불렀다.(사진=곽보연 기자)
그러나 이 수석의 범인은닉 혐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귀국지시'에 종국적 수사방해 고의 있었는지가 문제
범인 은닉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범인은닉죄라 함은 죄를 범한 자임을 인식하면서 장소를 제공하여 체포를 면하게 하는 것만으로 성립한다”고 하고 있다. 범인에게 수사기관에 출두하지 말라고 권유하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법은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윤 전 대변인의 행위는 우리법 형법상 강제추행 또는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가 적용된다. 강제추행은 징역 10년 이하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 성폭력처벌법상으로는 징역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렇다면 윤 전 대변인의 범죄행위는 어느 혐의를 적용하더라도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윤 전 대변인을 도피하게 한 경우 형식적으로는 범인은닉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수석의 윤 전 대변인에 대한 귀국지시가 범인을 은닉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던 것인지가 문제된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범인은닉죄가 성립되려면 미국 경찰관의 수사 또는 체포를 종국적으로 방해하려는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이 수석이 그런 의도를 가졌다고 보기 어럽다는 것이다.
검찰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형식적으로 범인도피죄나 교사 등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지만 윤 전 대변인을 빼돌려 수사나 체포를 면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수석이 윤 전 대변인의 주장처럼 귀국을 지시했더라도 도덕적 비난 가능성은 있지만 위법하다고 볼 여지는 적다”고 말했다.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2일 이 수석의 귀국지시 논란에 대해 “법리검토를 해본 결과 설령 귀국지시가 사실이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해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 범인도피죄에서의 ‘은닉’, 다시 말해 수사기관의 수사나 체포행위를 종국적으로 방해하는 행위의 수사주체 범위에 미국 수사기관이 포함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 경우 범인도피죄에서의 은닉에 대한 수사주체는 우리나라 수사기관임을 전제로 해석하는 법률가들이 많다.
◇미국법상 범인도피죄 外 사법방해 혐의 성립도 가능
한편, 미국변호사들 중에는 범인도피죄와 더불어 사법방해행위도 성립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법의 경우 우리와는 달리 여러 범죄 발생시 가장 중한 범죄에 나머지 범죄가 흡수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적용된다.
미국법상 고의로 범인을 은닉 내지 도주하게 한 경우에는 범인은닉죄 성립은 물론 사법방해죄가 별도로 성립한다. 범죄피해자의 경우에는 범인은닉 등의 행위로 본인의 수사받을 권리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당했음을 이유로 범죄은닉자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한 미국변호사는 “2007년 5월 미국 오렌지카운티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와 관련해 당시 범죄를 저지른 현대자동차 미주법인(HMA)소속 직원은 물론, 이 직원을 한국으로 귀국시켜 범인도피를 한 혐의로 현대차 법인을 고소한 사례가 있고, 민사적으로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이번 사건은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이고 귀국 경위에 대해서도 당사자들 간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속단은 힘들다”며 “다만, 형사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윤 전 대변인의 주장처럼 이 수석이 귀국지시를 했다면 피해당사자에 의한 민사소송은 윤 전 대변인과 귀국지시를 내린 사람을 대상으로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윤 전 대변인의 사법처리 수순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워싱턴DC법상 피해자와 합의해도 윤 전 대변인 계속 수사
일단 이번 사건의 경우 사건발생지가 워싱턴DC로 워싱턴주법이 아니라 연방법이 적용된다. 연방법에 따르면 성범죄는 피해자와 합의해도 접수된 사건은 계속 조사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윤 전 대변인은 피해자 A씨(21·여)와의 합의와 관계없이 수사를 받게 된다.
윤 전 대변인의 범죄행위는 연방법상 허락 없이 타인과 성적인 행동이나 접촉에 관여한 ‘경죄 성추행(§22-3006. Misdemeanor sexual abuse)’에 해당하며, 180일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달러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미국경찰이 우리나라 수사기관을 통해 윤 전 대변인을 송환해달라는 요구는 할 수 없다. 범죄인인도 조약상 1년 이상의 금고 또는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자만 인도요구를 할 수 있는데, 윤 전 대변인에 적용되는 범죄의 형은 최고 징역 6월 이하이기 때문이다.
단, 한-미 형사사법공조조약 1조 2호에 따르면 미국 수사기관이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할 경우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이에 응하도록 공조하게 되어 있어 미국 수사기관이 이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은 있다.
국내에서의 수사 가능성은 윤 전 대변인의 범죄행위가 친고죄이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피해자 A씨가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는 한 시민단체 등이 수사의뢰를 하더라도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
◇법률상 청와대가 윤 전 대변인 미국 출국 강요 못해
결국 이번 문제의 가장 간명한 해결방안은 윤 전 대변인이 미국으로 출국해 워싱턴DC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는 것이다. 현행법상 청와대가 나서 윤 전 대변인을 미국으로 출국시켜 조사를 받게 할 방법도 사실상 없다.
윤 전 대변인은 현재 우리나라 변호사와 미국변호사 등을 선임해 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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